훈민정음 상주 해례본 원소유주, 국가에 ‘안타까운 기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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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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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지만… 바칩니다

7일 오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골동품상 조용훈 씨(오른쪽)가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권을 넘긴다는 기증서를 김찬 문화재청장에게 전달했다.
오른쪽은 본보 5월 5일자 A12면.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7일 오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골동품상 조용훈 씨(오른쪽)가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권을 넘긴다는 기증서를 김찬 문화재청장에게 전달했다. 오른쪽은 본보 5월 5일자 A12면.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경북 상주의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금 그 제본이 해체돼 있어 훼손과 멸실이 우려됩니다. 조속한 보존 처리와 교육을 위해, 나아가 온 국민이 문화재를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에 기증하고자 합니다.”

7일 서울 경복궁 내 고궁박굴관 강당에서 열린 ‘훈민정음 해례본 기증식’에서 골동품상 조용훈 씨(67)는 기증서를 전달하며 이같이 말했다. 실물이 빠진 채로 서류만 오가는 묘한 기증식이었다.

▶본보 5일자 A12면 “훈민정음 해례본 되찾기 바라며…”

이 해례본은 2008년 7월 상주에서 배모 씨가 문화재 감정을 신청하면서 세상에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조 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승소했으나 배 씨는 해례본을 돌려주지 않고 숨기고 있다.

이번 조 씨의 기증에 따라 문화재청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적극적으로 배 씨 집을 수색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법정 다툼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배 씨가 “조 씨에게는 절대 돌려주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는 만큼 배 씨가 이번에는 마음을 바꿔 해례본의 소재를 밝힐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자의 창제 목적과 과정 등을 기록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책이다. 상주 해례본보다 먼저 알려진 간송미술관 소장본은 국보 70호이자 세계기록유산이다. 상주 해례본은 발견 당시 간송미술관 소장본보다 보존 상태가 좋았고 간송미술관 소장본에는 없는 표기와 소리에 대한 주석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 감정을 위해 당시 배 씨의 집을 찾아가 낱장으로 분리된 해례본 2장을 직접 본 박문열 문화재위원은 “많이 상해 있었지만 한눈에 간송미술관 소장본과 같은 판본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나라의 얼로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무가(無價) 보물”이라고 덧붙였다.

발견 당시 영상물을 통해 훈민정음 해례본임을 확인한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표지에 오성제자고(五聲制字攷)라고 쓰여 있었는데 연구자가 훈민정음 해례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성제자고란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다섯 소리로 글자를 만든 책이라는 뜻이다.

이날 기증식에선 조 씨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입수하게 된 경위와 경북 안동시 광흥사 불상 속에 있던 유물이 아닌지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다. 이에 대해 조 씨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집안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재청은 우선 실물을 찾아 보존 처리를 안전하게 한 뒤 소유권에 문제가 있다면 법적 판단을 받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유물 기증의 보상에 대해 문화재청은 “현재는 계획이 없지만 앞으로 문화재의 국가 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해 적절한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기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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