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출동뉴스A]낙태 단종 시신해부까지…풀리지 않은 ‘소록도의 한’

  • 채널A
  • 입력 2012년 3월 26일 22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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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제 뒤로 보이는 곳이 전남
고흥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소록도 입니다.

과거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리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격리됐던 곳이죠.

그런데 이 소록도에선
과거에 강제 낙태와 같은
인권 유린이 자행됐습니다.

이 때문에 소록도 주민 2백여 명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요

잔혹했던 소록도의 역사를
윤성철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채널A 영상] 낙태 단종 시신해부까지…풀리지 않은 ‘소록도의 한’

[리포트]
1973년 여름, 소록도의 한 교회 앞에서
찍은 낡은 사진.

사진 속 아이들은 해맑게 웃고 있지만
지금 그 자리는 적막만이 감돌뿐,

아이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가 소록도에서 이들의 웃음을
사라지게 한 걸까?

전남 고흥 땅 끝에서 차를 타고 5분 남짓.

다리를 건너면 한 때 한센병 환자들에게 유배지나 다름없던
소록도가 나옵니다.

길까지 나와서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67살 김시영 할머니.

16살 꽃다운 나이에 걸린 한센병.

소록도로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습니다.

고생 끝에 30대 중반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6개월 된 뱃속의 아이를 당시 병원이 강제로
낙태시켰습니다.

[인터뷰 : 김시영 / 한센병 환자]
"그 아이 생각만 하면… 힘들게 여기서는 봐주는 거
없어서, 사회에서는 4개월 이상은 (낙태) 안 했는데,
여기서는 강제로 했는데..."

이남철 할아버지도 가슴에 남모를 아픔이 있습니다.

한센병 환자의 대를 끊어야 한다는 병원 정책에
못 이겨 정관수술, 이른바 단종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 : 이남철 / 한센병 환자]
"약자가 어떻게 해요. 당해야지.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상황이."

부임해오는 병원장의 성향에 따라
아이를 낳아 기른
이들도 일부 있지만 좋은 시절은 그 때뿐.

원장이 바뀌면 생떼 같은 피붙이와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육지의 고아원과 보육원에 보내졌습니다.

[한센병 환자]
(전에 낳았던 애기들은?) 다 보육소 갔어.
(엄마, 아빠하고 떨어져서요?) 응.

[스탠드업 : 윤성철 기자]
“제가 서있는 곳은 일제가 지난 1917년 설립한
자혜의원입니다. 한국인 한센병 환자들의 잔혹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소록도에는 일제가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낙태와 단종 수술, 시신해부를 한 단종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낙태한 태아와 한센병 환자들의
시신은 병에 담겨 수십년 동안 전시됐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비인간적인 인권유린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센병 환자]
"살아 있는 애들도 싸서 화장마루에 버리고,
낳아서 수술한 애들은 유리병에 알콜
넣어서 실험도구로 (썼어요.)"

평생을 마음에 진 응어리.

그 한을 풀고자 소록도 환자 207명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신청했습니다.

평생 겪어온 한센병 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이제라도 바로잡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 김명호 소록도주민자치회장]
“법정 전염병이지만 유전은 아니고. 요즘은 집에서
약 두 번만 먹으면 완치되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소록도 병원이 보유하고 있는
낙태와 단종 관련 수술기록은 불과 29건 뿐.

[인터뷰 : 선태웅 / 국립소록도병원]
“단종은 몇사람 나오는데 낙태는 거의 자료가 없습니다.
(낙태는 당시에도 꺼림직했던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평균 나이는 75세.

이들이 평생 받아온 멸시와 일방적 희생을 되돌리기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채널A뉴스 윤성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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