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개학때 파마 풀어… 올핸 인권조례 믿고 그냥 갈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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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학생인권조례 시행에 일선학교 새학기 생활지도 혼란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공포 하루 만에 전체 초중고교의 학칙을 개정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30일 확인됐다.

교육계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세부 지침 없이 무조건 학칙 개정을 유도하면 학생들이 한꺼번에 자유를 누리면서 생활지도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혼란을 막기 위해 시교육청에 즉각 시정명령을 내리고, 2월 7일까지 학칙 개정 지시를 유보하지 않으면 직권 취소하거나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두발 자유다. 미용실에 파마나 염색을 문의하거나 개학이 됐는데도 머리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학생이 늘었다.

서대문구의 한 미용실에는 남학생이 “지금 블루블랙으로 염색했는데, 다시 레드와인으로 염색하려고 한다. 파마도 윗머리와 앞머리만 웨이브를 주고 싶은데 가격이 어느 정도냐”고 문의했다. 양천구 A중 3학년 B 양은 “예전에는 개학 전에 파마를 푸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학생인권조례를 믿고 그냥 등교하겠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강남구의 중학교 학부모 정모 씨(47)는 아이들이 지켜야 할 적정선을 넘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10대 아이들은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텐데, 갑작스러운 자유에 권리의식까지 더해지면 어찌 될지 모르겠다”며 “자유에는 절제가 따른다는 걸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C중 교장은 “두발과 복장, 휴대전화 소지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교육청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새 학기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못 해줬다”고 했다. D초교 교장도 “학생인권조례에 초중고교별로 구분이 필요하다. 유치원생도 집회를 한다고 나서면 어쩔 건가”라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과 비교했을 때 서울시교육청이 너무 급하게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기도교육청은 2010년 10월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면서 “본격적인 시행은 2011년 3월 1일부터 한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칙 개정은 공포 이후 6개월 이내에 한다는 내용이 학생인권조례에 있다”며 “학교가 학칙을 빨리 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교장 설명회와 컨설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 해설서와 생활지도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학생대표 설명회를 통해 책임과 의무도 강조했다.

학칙을 두 달 사이에 두 번이나 개정해야 하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올해부터 주 5일제 수업이 시행됨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다음 달 13일까지 수업 일수를 조정한 학칙 개정을 완료한 뒤 보고하라고 했다.

E초교 교장은 “모든 학교가 최근 수업일수 조정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신설을 뼈대로 학칙을 개정했는데,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또 개정하긴 어렵다”며 “서둘러 개정을 추진했다가 혹시 대법원에서 조례에 대한 무효가 확인돼 또 학칙을 개정해야 한다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학교는 교과부가 대법원에 제기한 조례 무효확인 소송 결과를 본 뒤 검토해 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로구 중학교의 학부모 박모 씨(53·여)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한다면 체벌금지, 휴대전화 사용, 두발 자율화 등 교사의 생활지도가 어려워지는 학칙 개정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조례와 학칙 간 갈등 문제도 생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인권은 무책임이나 방종이 아닌, 자유와 책임으로의 초대다. 교사들은 두발 단속에 쏟았던 노고를 학교 폭력을 막는 데 쏟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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