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쉬쉬… 학교가 ‘폭력괴물’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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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미지 추락-교장 징계 걸려 덮기에 급급
가해학생 41% 제재 안받고 퇴학은 0.4% 그쳐
피해학생부모에 “가정교육 잘못” 되레 면박도

0.466%. 1%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이 비율은 지난해 학교폭력을 저지른 1만9949명의 가해학생 중 퇴학생(93명)의 비율이다. 강제전학 조치된 학생은 17.7%인 1129명이었다. 나머지는 교내봉사활동, 서면사과, 접촉금지, 특별교육 등 경미한 처벌만 받았다.

일만 터지면 보신(保身)을 위해 무조건 쉬쉬하는 학교의 비밀주의와 무사안일주의가 학교폭력의 그늘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피해학생과 학부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 (영상) 왕따피해 학생들 “선생님한테 얘기하자마자…”

최근 자살한 대구 중학생 A 군도 학교가 교내 폭력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 7월 이 학교 2학년 D 양이 집단따돌림 문제를 지적했다가 교사와 친구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고민하다 자살했지만 이 학교가 취한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숨진 D 양의 연습장에 가해 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학교 측은 아무런 조치도 안 했다.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쉬쉬하며 몸만 사렸다. 한 학부모는 “이 사건 이후 학교가 집단괴롭힘 신고 시스템만 제대로 갖췄어도 A 군 자살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숨진 A 군도 유서에 ‘보복이 두려워 폭행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했다.

수십 년 전부터 학교는 폭력으로 물들어갔지만 이렇다 할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교장 교감 담임교사 교육청을 포함한 교육 당국과 가해학생 학부모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데만 몰두해온 결과다. 교사들은 문제를 인지하고도 안일하게 대처하는가 하면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증거가 없다’며 덮었다. 피해학생에게 합의나 전학을 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구렁이가 담을 넘는’ 사이 한국의 교실은 더욱 폭력으로 물들어 간 것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생 356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학교폭력의 75.2%가 교실 복도 화장실 등 교내에서 벌어졌지만 가해학생의 41%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펴낸 인권상담사례집에 따르면 고교생 B 군도 전학 직후 체육과 학생들에게 맞아 턱뼈가 부러졌지만 교장은 피해학생 학부모에게 “아들 교육을 잘못 시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폭력사건 은폐의 담합 구조’를 근본적 문제로 지적한다. 학교 이미지 실추와 교장 징계 등이 걸려 있어 은폐하려 든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행정적인 부담을 져야 하는 것도 쉬쉬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혔다.

대구=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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