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자식 잃은 아픔 딛고 “살아있는 한 장학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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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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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호프집 화재’ 12주기
유가족들, 장학기금 모아

중고교생 57명을 숨지게 한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 12주기 추모식이 지난 달 30일 이들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 중구 인현동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중고교생 57명을 숨지게 한 ‘인천 호
프집 화재사건’ 12주기 추모식이 지난 달 30일 이들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 중구 인현동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 12주기 추모식이 지난달 30일 화재 현장 인근의 중구 인현동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화재사건이 일어난 날은 12년 전 인현동 인근의 고등학교 교내축제가 열린 토요일이었다. 휴일을 맞은 12기 추모식에는 희생자 유가족과 친지 40여 명이 참석해 40분간 조촐하게 행사를 마쳤다.

○ 잊고 싶은 악몽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뒤뜰에는 화재사건으로 숨진 중고교생 57명의 이름을 새긴 묘비와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유가족들은 매년 위령비 앞에서 추모식을 열어왔고, 월례 모임도 한다.

이들은 추모식 때 인천앞바다 팔미도 해상까지 배를 타고 나가 영혼을 달래는 의식도 매년 했지만, 올해엔 이 같은 ‘해상 추모’를 생략했다. 숨진 학생 중 90%가량의 유골을 팔미도 주변 해상에 뿌렸었다. 바다에 산골하며 오열했던 현장에 다시 가고 싶어 한 유족들도 있었지만 올해엔 배 삯 내기가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을 감안해 추모제만 간단히 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12기 추모식은 위령비 앞에서 추모 제례를 한 뒤 헌화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유가족들은 “아이를 잃고 난 이후 가세가 기운 유족이 많아 바다에 나가는 배 삯도 대기가 힘든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사정을 아는 인천 중구가 최근 1∼2년 사이 행정선을 빌려줘 해상 추모를 이어갔지만 올해엔 구의 지원마저 중단됐다고 한다.

그러나 유가족들에겐 추모행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학업을 마치지 못한 자녀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장학사업이 체계적으로 이어지길 소원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 십시일반으로 8000만 원 가까운 장학기금을 모았다.

당시 유가족대책위원회가 인천시와 보상협의를 할 때 장학재단 설립 지원 약속을 받기도 했다. 유가족 이모 씨(65)는 “시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유족들이 모은 기금으로만 9명에게 학자금을 줬다”며 “기금 규모가 너무 작아 언젠가는 고갈되겠지만 부모들이 살아있는 날까지 장학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송영길 인천시장이 변호사 시절 화재사건 보상을 처리하는 인천시 고문변호사였기 때문에 지난해 시장 당선 직후 이런 실정을 설명해주었다”며 “시가 아직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유가족들 힘만으로 장학사업을 지속하기 벅차다”고 호소했다.

1999년 10월 30일 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호프집 화재 현장. 동아일보DB
1999년 10월 30일 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호프집 화재 현장. 동아일보DB
○ 희생자에게 곱지 않은 시선에 상처

유족들의 가장 큰 불만은 호프집에서 숨진 학생들을 곱지 않게 보는 주변 시선이다. 비행청소년으로 치부해 피해 학생들을 사회적 희생양으로 보지 않으려는 시각이 있다.

호프집 사건이 나기 4개월 전 경기 화성에서 유치원생 19명이 숨진 ‘씨랜드 화재참사’ 사건과는 대조적이다. 서울 송파구는 씨랜드에서 숨진 유치원생을 기리는 추모공원을 조성해 안전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호프집에서 숨진 학생들은 당시 축제를 끝내고 고교생 전문 모임장소로 유명했던 ‘라이브Ⅱ 호프집’에 있다 화마 봉변을 당했다.

이 호프집은 예약을 통해 학생 150명 정도를 한꺼번에 받아 2시간 정도 장소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기 때문에 주변 신고로 영업장이 폐쇄된 상태였지만 경찰관 비호로 장사를 계속했던 것으로 경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한 유가족은 “숨진 아들은 제사 때 어른들이 권하는 음복주 1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고교생이었는데, 당시 친구들과 제물포고교 축제에 갔다 호프집에서 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술집에 간 학생들을 탓할 수는 있지만 외부에서 문을 잠그고 영업을 하도록 방치함으로써 대참사가 발생하게 된 책임은 사회와 정부에 있다”며 “이에 대한 적절한 사후 조치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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