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독립 혼 되새기며 창동역 주변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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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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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동역의 재발견

1985년 서울 도봉구 창동 일대에서 이뤄진 재개발로 헐리기 전에 촬영한 창동역. 현재 민자 역사 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창동역 터 인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는 등 100년이 넘는 역사를 담고 있다. 도봉구 제공
1985년 서울 도봉구 창동 일대에서 이뤄진 재개발로 헐리기 전에 촬영한 창동역. 현재 민자 역사 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창동역 터 인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는 등 100년이 넘는 역사를 담고 있다. 도봉구 제공
민자역사 공사가 한창 진행되다 멈춰선 지하철 1·4호선 창동역. 시행사 경영진의 비리로 지난해 11월 공사가 중단돼 1년이 돼 가고 있지만 창동 민자역사는 앙상한 철골구조만 드러낸 채 방치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완공식을 열어야 했다. 하지만 30%도 다 짓지 못해 투자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탈 많은 이 창동 민자역사 자리는 사실 100년의 역사가 담긴 유서 깊은 곳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일본군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긴 곳이 바로 이 창동역 주변이다.

○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남아 있어

1910년 10월 경원선 착공 이후 창동역은 이듬해 10월 경원선 용산∼의정부 구간이 개통되면서 문을 열었다. 1910년 8월 한일강제병합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유독 창동역 주변에 많이 모이게 됐다. 당시 이 일대는 경기 양주군 노해면으로 서울에 포함되지 않았다.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독립운동가를 무료로 변호했던 민족 인권변호사 가인 김병로 선생(1887∼1964)이 창동역 주변에 처음으로 이주해 왔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선생을 따라 3·1운동을 초기에 기획한 48인 중 한 명으로 지명돼 옥고를 치르고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하 송진우 선생(1890∼1945)도 창동역 근방에서 기거했다. ‘조선 3대 천재’로 불리며 대하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 선생(1888∼1968)도 1939년 식구들을 전부 데리고 창동으로 옮겨왔다. 아쉽게도 이들이 살던 집은 재개발과 함께 사라진 후 상가나 아파트 등으로 변해 집터만 더듬어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인사들의 집도 창동역 주변에 많다. 사회운동가이자 종교운동가인 함석헌 선생(1901∼1989) 역시 1983년부터 말년까지의 삶을 도봉구 쌍문동 옛집에서 기거하며 지냈다. 청년노동자 전태일의 집 역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다. 현재 이곳은 1985년 재개발 당시 아파트가 들어섰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히는 김수영 시인(1921∼1968)도 1954년부터 2년간 가족과 함께 창동에서 살았다.

○ 옛 역사를 더듬으며 걷기

도봉구는 창동역 주변에 흩어져 있는 역사적 인물들을 되새겨 보는 의미에서 ‘현대사 인물길 따라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내년 초부터는 옛 집터 자리에 표지석이나 안내문을 세워 시민들에게 이곳에 담긴 역사를 널리 알릴 계획이다. 현대사 인물길은 창동역에서 출발해 창동초(옛 창동보통학교)에서 벽초 홍명희,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위당 정인보 선생의 옛 집터를 따라가다 함석헌 선생 옛집을 거쳐 김수영 시인의 옛 본가로 이어진다.

22일부터 이달 말까지 창동문화마당에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함께해 온 창동역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한다.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와 함께 ‘도봉 지역의 문화 인물 탐구’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현대사 인물길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도봉문화원(02-905-4026)으로 문의하면 된다. 도봉구 관계자는 “매일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단체 참가 문의가 있으면 전문가가 동행해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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