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고딩’ 5명, 나쁜 외래식물 퇴치단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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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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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변 산 찾아 ‘서양등골나물’ 퇴치 작전

박정민 양(17·왼쪽)과 이소윤 양(18)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공원을 돌며 서양등골나물을 제거하고 있다. 이소윤 양 제공
박정민 양(17·왼쪽)과 이소윤 양(18)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공원을 돌며 서양등골나물을 제거하고 있다. 이소윤 양 제공
이소윤 양(18·중앙대사범대부속고)은 7월 말부터 주말마다 산속을 누벼왔다. 그때마다 산행 중인 어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이렇게 예쁘고 향기 좋은 꽃을 왜 자꾸 뽑느냐”는 것이었다. 이 양을 비롯해 함께 다니던 고등학생 5명은 산이나 공원을 거닐며 특정 식물들을 뽑았다.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 양 등은 “겉으로는 예쁘지만 이 식물은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나쁜’ 식물”이라고 답했다.

○ ‘생태계 교란 외래종’ 퇴치

이 양은 6월 말 주변 권유로 환경부가 주관하는 ‘생물자원보전 청소년리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국내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행사였다. 참여 학생의 대다수는 활동 주제를 ‘멸종위기종’이나 ‘한반도 고유종’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 양은 생각이 달랐다.

“고유 동식물이나 멸종위기종이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일단 이들의 자생을 위협하는 요인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태계 교란 외래종과 관련된 활동을 계획하게 됐습니다.”(이 양)

이 양은 함께 활동할 친구들을 찾았다. 친구 이해진 양(18·경기여고)을 비롯해 후배 박정민 양(17·압구정고), 변재호 군(17·세화고), 이동진 군(17·압구정고) 등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을 모아 ‘서양등골나물 퇴치단’을 7월 초 만들었다. 이 양은 “생태계 교란 외래식물 중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등골나물을 첫 제거대상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1978년 처음 국내에서 발견된 북아메리카 국화과 식물인 ‘서양등골나물’은 서울 남산과 북한산, 경기 성남, 광주에서 빠르게 번식하고 있다. 키가 130cm 정도인 서양등골나물은 잎이 깻잎처럼 생겼다. 여름철에 숲 속에서 하얀 눈송이가 뭉친 듯한 모양의 꽃을 피운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서양등골나물 외에도 수많은 외래식물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다. 최근 북한강 상류의 주요 호숫가에는 생태계 교란 외래식물 ‘가시박’이 급증했다. 덩굴손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 번식하는 바람에 일대 토종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강원도에도 생태계 교란 외래식물 ‘돼지풀’과 ‘도깨비가지’가 급증하고 있다. 과학원 길지현 연구사는 “이들은 원예용, 식용으로 국내로 들어왔거나 수입된 동물사료에 묻어 반입됐다”며 “지금은 너무 많이 확산돼 국내 자생식물이 위협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퇴치단은 주말마다 서양등골나물이 많은 곳을 찾아 나섰다. 활동 초반 ‘서양등골나물이 많다’고 소문난 남산 일대를 누볐지만 많은 수를 발견하지 못했다. 반면에 서울 강남구 개포동 청담동 등 자신들이 거주하는 동네 일대에 서양등골나물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 양은 “주요 번식지로 알려진 곳은 퇴치활동이 활발하지만 정작 시내에는 퇴치활동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우리 손으로 지키는 환경

서양등골나물을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햇빛을 받지 않아도 잘 자라는 서양등골나물의 습성 때문에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퇴치 활동을 하다 보니 모기에 물릴 때도 많았다. 퇴치활동 중 어른들로부터 “왜 꽃을 함부로 뽑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변 군은 “예쁘고 향기롭다 보니 생태계 교란 외래식물인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깻잎나무’라는 애칭까지 붙였다”며 “우선 사람들에게 생태계 교란 외래식물에 대해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생태계 교란 외래종에 대한 인식조사를 벌이고 주민들을 생태계 교란 외래종 퇴치에 참여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주민 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무려 93.5%가 서양등골나물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이 양은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다양한 주민참여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며 “외래식물 퇴치 체험교실을 구상한 후 도서관 측에 프로그램에 포함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도서관 측은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8월 13일 주민들이 참여하는 생태계 교란종 퇴치 체험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서울 개포도서관 이미정 팀장은 “이런 프로그램을 고등학생들이 먼저 제안해 놀랐다”며 “다른 체험 프로그램보다 신청이 2배나 많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환경보호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 양은 아예 “환경학자가 돼서 국제적인 환경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학생들은 “어른들은 ‘너희가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만 작은 실천이라도 환경을 위해 꼭 하겠다는 것이 우리 각오”라며 “지금의 환경에서 살아갈 주역이 바로 청소년인 우리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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