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일파 후손’ 아름다운 사죄문 화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8일 0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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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군수 손자, 민족문제연구소 홈피에 참회글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벽돌 한 장을 올리는 심정으로, 우리 집안의 진실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고하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고위관료 경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할아버지를 대신해 친손자가 사죄의 뜻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18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경기도에 사는 윤모 씨는 지난달 초 이 단체 홈페이지에 비공개로 '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2300여 자에 달하는 윤씨의 글에는 일제 강점기 초반 군수를 지낸 할아버지의 친일 행위에 대해 후손으로서 느끼는 복잡한 심경과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혹시 할아버지도 일제 초기 군수를 지냈다면 명부에 있지 않을까 해 도서관에 달려가 찾아봤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해방 후 반민특위를 통해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은 것이 역사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생각했고, 친일파와 그 자손들은 호의호식했지만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어렵게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분개했는데 내가 친일파 후손임을 알게 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윤 씨의 글과 친일인명사전 내용 등에 따르면 그의 할아버지 윤모 씨는 관비유학생 파견 사업으로 일본에서 유학한 뒤 대한제국 농상공부 관리로 관료 생활을 시작, 한일합병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 등에서 군수를 지내고 1926년 퇴직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민족의 운명과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알 길이 없다. 을사국치와 한일강제병합의 과정 속에서 관직에 계셨던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셨을까"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민족문제연구소에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윤씨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고생하신 많은 분과 그 자녀분들에게 한 친일파의 손자가 할아버지를 대신해 가슴깊이 사죄드린다"며 글을 맺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이달 초 윤 씨를 직접 만나 전문 게재를 허락받고 최근 글을 공개로 전환했으며 "용기 있는 결정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답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윤씨가) 평소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했는데 충격적이지만 오히려 사실을 알게 돼 다행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방 사무국장은 이어 "군수는 당시 직업 관료로서 일제 지배 체제에 협력했다는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는 없지만, 책임이 더 무거운 이들의 후손들도 전혀 사죄의 움직임이 없다는 점에 비춰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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