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인정’ 좌절… 방글라데시 출신 모하잔 씨 가족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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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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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태어난 3남매의 꿈 지켜주세요”

갓 백일을 지난 막내딸의 재롱에 칸찬 모하잔 씨(오른쪽) 가족의 표정이 환해졌다. 난민 신청이 잇달아 불허되면서 시련이 계속되고 있지만 모하잔 씨의 세 자녀는 이 부부의 희망이자 꿈이다. 16일 오후에 찾은 모하잔 씨의 집 옷장 문에 남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부인 파랏 아윱 씨의 글이 적혀 있다(아래 사진). 안산=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갓 백일을 지난 막내딸의 재롱에 칸찬 모하잔 씨(오른쪽) 가족의 표정이 환해졌다. 난민 신청이 잇달아 불허되면서 시련이 계속되고 있지만 모하잔 씨의 세 자녀는 이 부부의 희망이자 꿈이다. 16일 오후에 찾은 모하잔 씨의 집 옷장 문에 남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부인 파랏 아윱 씨의 글이 적혀 있다(아래 사진). 안산=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97년 9월 23일 김포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안착했다. “이제 살았구나.” 방글라데시를 떠나온 칸찬 모하잔 씨(39)의 한국 생활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시작됐다. 한국 땅을 바라보기만 해도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샘솟았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꿈은 포기했지만 한국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라는 꿈을 가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몰랐다. 고국 땅을 다시 밟는 것보다 이국땅에서 꿈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달 23일이면 모하잔 씨의 한국 생활은 만 14년이 된다.

○ 고국을 등지다

그는 기독교 신자다. 전 인구의 90%가량이 이슬람교 신자인 방글라데시에서 기독교 신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그가 살던 방글라데시 동남부의 치타공 지역은 소수 종교에 대한 탄압이 유독 심했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에 관심을 가진 모하잔 씨는 1992년 개종하고 2년 뒤 세례를 받았다. 가족은 이교도인 그를 집에서 쫓아냈다. 그의 형은 “참수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슬람교 신자들로부터 테러를 당해 그의 동료가 죽기도 했다. 결국 그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한국행을 선택했다.

한국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공장과 공사현장을 돌며 근근이 생활하던 그는 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자가 됐다. 그렇다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 한국에도 난민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03년 11월에 난민 신청을 했다. 그러나 신청 3년 만인 2006년 법무부는 불허 결정을 내렸다. ‘종교적 박해를 받을 근거가 있는 공포’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의 신청도 거절당했다. 모하잔 씨는 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110만 원을 주고 변호사까지 선임해 ‘난민 인정 불허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올해 2월 대법원은 같은 판단을 내렸다.

○ 새 생명의 탄생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07년 봄 그는 연세어학당에서 파키스탄 출신의 파랏 아윱 씨(38·여)를 만났다. 유학생이던 아윱 씨 역시 기독교 신자로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 공감대는 두 사람을 연인 관계로 발전시켰다. 같은 해 8월 이들은 결혼을 했다. 이듬해 아들 아이작(3)이 태어났고 1년 뒤 둘째아들 조슈아(2)가 태어났다. 가족이 생기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모하잔 씨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난민 인정 절차가 진행 중이면 정상적인 취업이 불가능하다. 주변의 도움으로 임시직을 전전하며 한 달에 150만 원가량을 벌었다.

소송에서는 졌지만 그나마 부인과 두 아들은 인도적 차원의 체류 허가를 받았다. 가족 전체가 쫓겨날 위기는 넘긴 것이다. 올해 5월 모하잔 씨는 다시 법무부에 난민 인정을 신청했다. 부인은 셋째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8년 전 난민 신청을 할 때와 달리 그에게는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었다.

5월 말 아윱 씨가 임신당뇨 증세를 보였다.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의 지원으로 아주대병원을 찾았다. 임신부와 아이 모두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다. 일주일 넘게 집중 치료를 받은 끝에 6월 8일 아침 3.8kg의 예쁜 딸 기자야가 태어났다. 다행히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했다.

○ 다시 행복을 꿈꾸다

이달 초 기다리던 결과가 나왔다. 또다시 난민 인정이 불허됐다. 그 대신 그에게도 인도적 체류 허가가 내려졌다. 법적으로 한국에 사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직장을 갖기는 어려웠다. 대부분의 기업은 신분이 보장된 외국인만 고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단속된 뒤 지금까지 일을 못하고 있다. 생활은 엉망이 된 지 오래다. 구청으로부터 80만 원가량의 긴급 구호비를 두 차례 받고 적십자 등 구호단체들의 지원을 받은 것이 전부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한 빌라에 있는 15m²(약 4평) 남짓한 모하잔 씨 집에는 TV조차 없다. 낡은 선풍기는 전기요금 때문에 여름 내내 제대로 틀지도 못했다. 뽀로로를 좋아하는 아이작과 조슈아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심심하다”며 아빠만 졸라댄다. 그나마 27만 원인 월세까지 밀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신세다.

그는 9일 법무부의 난민 인정 불허 결정에 대해 이의 신청을 냈다. 그러고는 간절히 호소했다. “우리 가족은 한국 말고는 갈 곳이 없어요. 그저 아이들이 한국 땅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산=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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