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軍부정투표 양심선언 이지문 씨, 연대서 정치학 박사학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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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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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호루라기’… 이젠 한국민주주의의 대안을 내놓다

1992년 3월 23일자 본보 지면.
1992년 3월 23일자 본보 지면.
“내부고발·부패방지 운동가에서 ‘추첨 민주주의’ 운동가로 새 출발을 꿈꿉니다.”

1992년 ‘군 부재자투표 양심선언’으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이지문 씨(43·당시 중위)가 26일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박사논문은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고양을 위한 추첨제 도입 방안 연구’. 이 씨는 이 논문에서 “직접선거로 대표를 뽑는 의회에서 추첨 방식으로 의회권력을 창출하는 추첨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추첨 민주주의’는 쉽게 말해 현재의 선거 방식이 아닌 연령 성별 소득 지역 등으로 전 국민을 분류한 뒤 일정 비율에 따라 대표를 뽑아 ‘시민의원단’을 선출하자는 것. 이 경우 현재 엘리트 중심인 국회보다 서민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국정에 반영될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설명이다.

이번 논문의 출발은 19년 전 그가 군 부재자투표 양심선언을 할 때부터 시작됐다. 이 씨는 “당시 부하에게 부정투표를 부탁하던 중대장의 눈물을 보면서 참을 수가 없었다”며 “부정투표로 엉뚱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란 생각에 양심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씨의 선언은 군 부재자투표를 영외 투표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92년 군 부정투표에 대한 양심선언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이지문 씨가 연세대 교정에서 ‘추첨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992년 군 부정투표에 대한 양심선언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이지문 씨가 연세대 교정에서 ‘추첨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하지만 양심선언의 대가는 가혹했다. 이등병으로 파면돼 불명예 제대하자 입대 전 특채됐던 대기업은 채용을 취소했으며 공무원시험의 길도 막혔다. 이 씨는 “전역한 동기들이 취직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보며 인생 낙오자가 된 것 같은 좌절을 느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절망 속에 살던 이 씨에게 1995년 2월 대법원의 파면처분 취소 확정 판결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양심선언으로 알려진 덕분에 28세에 서울시의원에도 당선됐다.

이 씨는 정치에 뜻을 두고 2000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서울 관악갑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떨어졌으며 2005년부터 내부고발 운동단체인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을 만들어 현재 부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이 씨는 각종 기관에서 강의를 하고 받는 강의료로 생활하고 있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은 그동안 해온 내부고발 운동을 한 차원 더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부패가 대부분 정치권력에서 나오는 만큼 정치제도를 개선하는 게 한층 높은 내부고발인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씨도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이 씨는 “현재 정치권력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두 추첨 민주주의를 반대할 것”이며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려면 기존 엘리트의 저항과 반대가 있겠지만 이미 국민참여재판 등 추첨 민주주의의 참여 양상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에 첫딸이 태어난다는 이 씨는 “추첨으로 뽑힌 보통사람들이 직접 정책 현안이나 이슈에 관해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칠 때 민주시민으로서 더욱 성숙해진다”며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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