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거주 위안부피해자 노수복 할머니 “생일도 몰라… 광복절이 생일, 한국 국적 찾는게 마지막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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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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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대사관앞 시위 참석

“조국은 날 기억할까…” 광복절을 앞두고 20년 만에 고국을 찾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노수복 할머니가 10일 오후 열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건물이 노 할머니의 안경 렌즈에 비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조국은 날 기억할까…” 광복절을 앞두고 20년 만에 고국을 찾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노수복 할머니가 10일 오후 열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건물이 노 할머니의 안경 렌즈에 비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메이디 막 막.”(‘너무 너무 나쁘다’는 뜻의 태국어)

60여 년 만에 다시 일본 앞에 선 할머니의 입에서는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었지만 다시 떠올리기도 끔찍한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10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평생을 이국에서 살아온 노수복 할머니(90)가 참여했다.

노 할머니는 21세이던 1942년 부산 영도다리 근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다 일본군에 끌려갔다. 가족에게 작별인사도 못한 채 싱가포르와 태국으로 끌려 다니며 할머니는 이후 3년간 위안부로 지냈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태국 유엔포로수용소에 잠시 수용됐던 할머니는 ‘이대로 갇혀 있다가는 또 죽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수용소를 탈출했다. 말레이시아의 이포를 거쳐 태국 최남단인 핫야이까지 도망친 할머니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다.

가진 것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이국땅에서 할머니는 살기 위해 가정부 일부터 손빨래, 식당종업원 등 온갖 궂은일을 했다. 그러던 중 중국인 첸차오 씨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오랜 위안부 생활의 후유증은 할머니에게 불임이라는 시련을 줬다. 자녀가 없는 할머니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조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생활고로 고국으로 돌아올 여유조차 없었던 할머니는 이제는 한국말도 모두 잊었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한국말은 ‘안녕하세요’와 고향 주소인 ‘경북 안동군 풍천면’뿐이다.

2003년부터 할머니를 돌봐온 이한주 푸껫한인회 운영이사(56)는 “할머니가 자신의 생일은 잊어버리고도 8월 15일은 나라 되찾은 날이라며 꼬박꼬박 챙겨왔다”며 “그래서 매년 광복절을 할머니 생신 삼아 축하해 왔다”고 말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올해 생일은 고향에서 보내게 됐다.

광복 66주년을 맞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한국으로 초청한 것. 정대협은 1988년 할머니를 만난 이후 최근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할머니의 고향 방문은 1984년과 1991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노 할머니는 지난해 한쪽 폐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아 몸이 편치 않지만 10일 열린 ‘수요시위’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한 시간 넘게 자리를 지켰다.

할머니의 평생 소원은 한국 국적을 갖는 것. 지금까지 할머니는 남편의 도움으로 중국 국적으로 살아왔고 이번 방한 때도 중국 여권을 이용했다. 통역을 위해 노 할머니와 함께 온 이한주 이사는 “노 할머니가 앞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 속에서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이번 방한 기간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 할머니는 11일 국회를 방문해 최영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을 만나고 이어 14, 15일 이틀간 고향인 안동과 부산을 방문한 뒤 17일 태국으로 돌아간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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