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하겠다고? 말리고 싶다”… ‘한국의 화이자’는 왜 없나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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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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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7개중 100억 매출 단 3개뿐… 4개는 사실상 ‘0’


“신약으로 돈 버는 회사 없습니다.”

일양약품이 2009년 시장에 내놓은 신약 ‘놀텍’(항궤양제). 이 약에 들어가는 성분 ‘일라프라졸’을 찾아내기까지 1148개의 신약후보 물질을 폐기했고 실험동물 1만5300마리를 사용했다. 중소제약사로서는 막대한 비용인 500억 원을 20년에 걸쳐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하지만 놀텍은 지난해 1년간 17여억 원어치 팔려 나갔을 뿐이다. 쉽게 말해 투자비용 회수에만 근 30년이 걸리는 셈이 된다.

놀텍을 포함한 국내 위궤양 치료제 시장 규모는 300억 원. 그나마 400∼500개의 복제약과 경쟁해야 한다. 기존 약의 텃세가 심해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을 얻기조차 쉽지 않다. 시장 예측에도 실패했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놀텍을 개발할 당시에는 역류성식도염보다 위궤양 시장이 2배 이상 컸는데 제품 출시 시점에는 이 비율이 역전됐다”고 말했다.

일양약품은 약효에 역류성식도염 증상을 추가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완료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 제약사들 고위험에 신약 개발 주저

최근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건넨 제약사의 약가를 최대 20% 깎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제약사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풀이한다. 제약사별로 연간 수백억 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 여기에 더해 내년부터 ‘실거래가 상환제’ ‘기등재 의약품 목록 정비 사업’ 등이 본격 시행된다. 모두 약값을 깎는 정책들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고서는 정부의 약가 정책으로 생산액 규모 500억 원 이하 제약사 54곳이 퇴출 위기에 놓일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신호는 “이제는 신약 개발에 나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약사는 복제약으로 손쉽게 돈 벌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보통 1000억 원이 넘어야 준블록버스터 신약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국산 신약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1999년 허가된 첫 국산 신약 SK케미칼 ‘선플라주’(위암항암제)를 포함한 4개 약품은 매출이 거의 없다. 지난해 매출이 100억 원이 넘은 국산 신약은 단 3개뿐. A제약사 관계자는 “신약 개발을 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차라리 외국 제약사의 특허를 빌리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 리베이트에 의존하는 관성 여전

국내에서도 화이자 같은 제약사가 나올 수 있을까. 업계 안팎에서는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지만 위험 부담이 덜한 복제약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내 제약산업 역사가 100년이 넘어가는데 신약을 개발한 회사는 손에 꼽힌다”며 환골탈태를 주문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0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제약업의 매출액 대비 원가 비율은 54.1%로 전체 제조업(82%)에 비해 낮다. 반면 ‘판매비와 관리비’ 비율은 35.6%로 제조업 평균(11.2%)의 3배가 넘는다. 판관비는 판매촉진비, 접대비, 광고선전비, 연구개발비 등을 포함한다. 이 비중이 큰 이유는 물론 리베이트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는 750곳이 난립하며 평균 생산액은 175억 원을 밑돌 만큼 영세하다. 신약 특허가 만료되면 국내 제약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복제약을 찍어내는 구조에서 리베이트는 매출 실적을 좌우할 수밖에 없었다.

다국적 제약사의 판관비 비중도 32.7%로 국내 평균(35.6%)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연구개발비 비중이 15∼20%로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6∼7%보다 훨씬 높다.

이에 대해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 확률은 1만분의 1이다. 신약 개발에 실패하더라도 망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선진화팀장은 우선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화이자의 연간 연구개발비는 7조4000억 원으로 동아제약(1090억 원)의 67배에 달한다. 단일 기업으로는 다국적 제약사와 경쟁이 힘든 구조다”라며 신약 펀드 조성과 해외 임상비용 지원을 제안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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