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수능 성패 가르는 유명시인의 ‘낯선 詩’와 미리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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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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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연계 분석<10>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나오는 시를 출제경향에 따라 분석해보면 일반적으로 ‘낯선 시+낯익은 시+어디서 본 듯한 시’ 로 조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점수의 승부처는 ‘낯선 시’다. 여기에서 변별력이 결정된다. 오늘은 EBS ‘고득점 300제’에 실린 유명 작가의 낯선 시를 공부해보자.》

우선 박목월의 ‘연륜(年輪)’이다. 어린 시절 ‘가시내’와의 이별을 못내 잊지 못하는 화자의 절절한 그리움을 그리고 있다. 물론 ‘수능완성’에 실린 김기림의 ‘연륜’과 제목이 같지만 주제는 다르다. 김기림의 시에서 ‘연륜’은 ‘연륜→활력을 잃고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삶→부정적 이미지’를 의미한다.

슬픔의 씨를 뿌려놓고 가버린 가시내는 영영 오지를 않고…… 한해 한해 해가 저물어 질(質)고은 나무에는 가느른 핏빛 연륜(年輪)이 감기었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목이 가는 소년(少年)은 늘 말이 없이 새까아만 눈만 초롱초롱 크고…… 귀에 쟁쟁쟁 울리듯 차마 못잊는 애달픈 웃녘 사투리 연륜(年輪)은 더욱 새빨개졌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이제 소년(少年)은 자랐다 구비구비 흐르는 은하수에 꿈도 슬픔도 세월도 흘렀건만…… 먼 수풀 질(質)고은 나무에는 상기 가느른 가느른 핏빛 연륜(年輪)이 감긴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박목월 ‘연륜’

이 시의 화자는 ‘가시내’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 가시내는 화자가 ‘목이 가는 소년’이었을 때 만난 소녀로, 시간이 흘러 소년이 자랐을 때 어린 시절의 그 사랑은 ‘핏빛’으로 화자의 가슴에 남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결국 화자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이별은 ‘연륜’이 되어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깊게 화자의 마음에 파고들어 아픔을 주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시내’는 소년을 떠나버린 대상이지만, 소년의 마음속에 켜켜이 감겨있는 대상이므로 이 역시 역설적 거리감을 지닌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나무’는 나이테가 안으로 쌓이는 생태적 특성을 갖는데 이를 떠나간 ‘가시내’에 대한 ‘소년’의 절절한 그리움이 쌓이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감긴다’는 나무에 나이테가 감긴다는 뜻으로 소년의 절절한 그리움과 괴로움이 소년의 내부에 겹쳐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박목월은 이와 비슷한 ‘그것은 연륜이다’라는 시를 썼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어릴 적 하찮은 사랑이나/가슴에 박여서 자랐다.

질 고운 나무에는 자줏빛 연륜이

몇 차례나 몇 차례나 감기었다.

새벽 꿈이나 달 그림자처럼/젊음과 보람이 멀리 간 뒤…… 나는 자라서 늙었다.

마치 세월도 사랑도/그것은 애달픈 연륜이다.

박목월 ‘그것은 연륜이다’

‘연륜’에서는 화자가 작품 밖에서 소년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한다. 반면 ‘그것은 연륜이다’에서는 ‘나는 자라서 늙었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자가 직접 경험한 것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전자는 매 연 끝의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를 통해 대상에 대한 소년의 원망과 그리움의 목소리를 절절이 표현하지만 후자에서는 그것이 삭제됨에 따라 ‘보다 안정되고 담담한 목소리’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반면에 둘 다 식물의 생태적 특성, 즉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세월의 축적을 말하면서 이를 활용하여 소년의 괴로움과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다음은 정지용의 ‘그의 반’이다. 과거 대학별고사에도 출제됐던 시다.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운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올라 나래 떠는 금성(金星),
쪽빛 하늘에 흰 꽃을 달은 고산 식물(高山植物)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 길 위
나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정지용 ‘그의 반’


정지용은 이 시에서 신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나 인간은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존재라는 태도를 견지하며 절대적 존재인 ‘그’, 즉 신앙의 대상인 신에 대한 자신의 경배와 묵도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1행에서 화자는 목적어를 도치시킨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여 ‘그’가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이고 자신은 미미한 존재임을 동시에 드러낸다. 2~6행에서는 ‘그’를 불, 달, 금성, 고산 식물 등으로 은유하여 ‘그’가 고귀하면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임을 나타낸다. 7~11행은 ‘그’에 대한 경배의 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화자의 신앙적 자세는 무조건적이고 순응적임을 잘 드러낸다. 12행에서 마지막 행까지는 ‘그’와 ‘나’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나’의 보잘것없음과 바다의 이편과 저편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나’와 ‘그’의 거리감, 그리고 ‘나’의 ‘그’에 대한 의타심이 드러나 있다. 내가 그의 반이라는 말은 그가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시는 한계성을 지닌 ‘나’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절대적인 ‘그’를 통해 구원을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다음은 2005학년도 3월 서울시교육청 학력평가에 출제됐던 유치환의 ‘거제도 둔덕골’이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들어선 화자가 고향마을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시다.

거제도 둔덕골은
팔대(八代)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적은 골 안 다가솟은 산방산(山芳山) 비탈 알로
몇 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 써서 병 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러갔건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모양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 번이나 불어 왔던가
시방도 신농(神農) 적 베틀에 질쌈하고
바가지에 밥 먹고
갓난것 데불고 톡톡 털며 사는 칠촌(七寸) 조카 젊은
과수며느리며 비록 갓망건은 벗었을망정
호연(浩然)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시서(詩書)와 천하를 논하는 왕고못댁 왕고모부며
가난뱅이 살림살이 견디다간 뿌리치고
만주로 일본으로 뛰었던 큰집 젊은 종손이며
그러나 끝내 이들은 손발이 장기처럼 닳도록 여기 살아
마지막 누에가 고치 되듯 애석도 모르고
살아 생전 날세고 다니던 밭머리
부조(父祖)의 묏가에 부조(父祖)처럼 한결같이 묻히리니
아아 나도 나이 불혹(不惑)에 가까웠거늘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父祖)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日出而耕)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

유치환 ‘거제도 둔덕골’

이 시는 고향 땅에서 자연과 역사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시적 화자의 고향, 거제도 둔덕골은 ‘조약돌 박토’이며 ‘외로운 앉음새’를 지닌 땅이라서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처럼 ‘행복된 바람’이 한 번도 불어온 적 없는 가난한 마을이다. 마흔 살이 가까운 시적 화자는 자신도 고향 땅에 돌아와 해 뜨면 나가서 밭을 가는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다음은 ‘종심(從心)’이라고 부르는 일흔 살의 시적 화자가 노년의 자기 삶을 반성하고 있는 김종길의 ‘귀로(歸路)’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규범을 넘지 않는다는 나이인데도,
집으로 돌아갈 때면 흔히 고개드는 두려움.

오늘은 오후에 인사동 근방에서,
사람들을 만나 볼일을 보고
즐겁게 담소(談笑)도 나누었건만.

늙은 주제에 주책이나 떨지 않았는지,
허튼 수작이나 늘어놓지 않았는지,
남의 험담이나 하지 않았는지.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차는 삼양동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멀리 도봉(道峯)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은 초여름의 신록(新綠)을 허리에 둘렀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윈 흰 이마를 높이 쳐들고,
조용히 저녁해를 받고 있는 저 천연스런 산봉우리들

그 산봉우리들 앞에/몸둘 바 없이 부끄럽고,
여지없이 왜소해지는 나의 초라한 몰골.

김종길 ‘귀로’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강사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강사
이 작품은 집에 가기 위해 삼양동 오르막길을 오르던 시적 화자가 시야에 들어오는 도봉을 보면서 느끼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반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적 화자는 ‘흰 이마를 높이 쳐들고’ 있는 ‘천연스러운 산봉우리들’을 보면서 지나온 길에서 자신이 쏟아냈던 말들이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도봉’이 화자에게는 고고한 질서이자 삶의 규범적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공간의 이동에 따른 심리적 변화, 의인화를 통해 묘사된 자연의 모습과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한 인간의 모습 사이의 뚜렷한 대비가 주제의 효과적인 형상화를 돕고 있는 작품이다.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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