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시, 수기 우수작 9편 선정… 교육에 활용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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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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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만 믿다 망했어요”… ‘실패 경험’이 창업교과서로

“아직도 14년 전 창업의 ‘악몽’이 떠올라요….”

박윤규 씨(59)는 1980년대 라면으로 유명한 한 식품회사에서 나름대로 ‘잘나가던’ 과장이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을 당한 그는 퇴직 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됐다. 1997년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산소’를 통에 담아 팔아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마치 음료수를 마시듯 지친 직장인들이 산소를 마시며 재충전을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될 것 같았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산소 상품이 유행이라는 소문을 들은 그는 1997년 동생과 함께 무작정 산소사업에 뛰어들었다.

청사진은 ‘잿빛’으로 변해갔다.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법인 설립 과정이나 공장 설립 방안 등 회사 설립의 기본이 되는 부분부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마케팅 전략 고민도 없었다. 산소를 왜 돈을 내고 사야 하는지 소비자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여기에 외환위기라는 시대적 상황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품은 팔리지 않고 사무실 임대료, 직원 급여 등 비용은 계속 발생했다. 결국 박 씨는 부채 3500만 원을 남기고 파산했다.

그는 최근 서울시가 마련한 ‘창업 실패 수기 공모’에 참여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박 씨는 “나의 실패 사례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창업 실패 이후 그는 신문배달, 수금 등 발로 뛰는 일을 해왔다. 가까스로 개인 파산에서 벗어난 그는 현재 또 다른 창업을 준비 중이다.

배움의 길은 성공 사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창업하다 실패한 사람들의 수기를 공모해 우수작 9편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창업 성공 수기 발표 사례는 있었으나 실패 사례를 모아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시가 수기 공모 52건의 글을 분석한 결과 창업에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창업 준비 부족(35%)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무작정 뛰어들어 실패를 맛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장려상을 받은 서유미 씨(32)의 사연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밋밋한 돌잔치를 최대한 재미있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2006년 돌잔치 이벤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저작권 협의 없이 아기의 ‘성장 영상’에 음악을 삽입해 문제가 됐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직원이 생기는 등 예상치 않은 암초를 만나 사업이 좌초됐다. 서 씨는 “창업하는 법에 대해 교육도 받지 않고 뛰어들어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시에서 마련한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며 외식업 관련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비용 지출이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장려상을 받은 정모 씨(53)는 주5일 근무제로 학생들의 주말 현장체험교육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현장학습교육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귀가시간이 늦을 때 학생들에게 주는 간식 비용, 버스비 등이 만만치 않았다. 인기 강사는 갑자기 사직하고 동업자는 홍보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는 등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면서 결국 사업에 실패했다. 이외에도 경영관리 미숙(23%), 동업자와 종업원의 관리 소홀(13%), 아이템 선정 실패(12%)가 창업 실패의 원인으로 꼽혔다.

신면호 서울시 경제진흥본부장은 “당선자들의 ‘망한 사례’를 창업교육 프로그램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가 운영하는 창업지원 프로그램은 ‘e-창업스쿨’ 교육 프로그램과 입주 프로그램인 ‘청년 창업 1000프로젝트’ 등 2개가 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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