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법안’에 밀려나는 놀이터 놀이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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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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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 까다로운 ‘안전법’ 내년 시행… 철거사태 우려

《 21일 오전 인천의 한 초등학교. 전교생이 630여 명인 이 학교 운동장에 있는 놀이시설은 한꺼번에 10명 정도가 이용할 수 있는 정글짐과 철봉이 전부였다. 이 학교는 3월 운동장에 설치돼 있던 구름사다리와 늘임봉 등 놀이시설 4개를 철거했다. 지난해 10월 안전검사를 실시한 결과 불합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
21일 오후 놀이기구가 정글짐과 철봉만 남은 인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한 명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이 학교는 3월 기존 시설이 놀이시설 안전점검을 통과하지 못하자 구름사다리와 늘임봉 등을 모두 철거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1일 오후 놀이기구가 정글짐과 철봉만 남은 인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한 명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이 학교는 3월 기존 시설이 놀이시설 안전점검을 통과하지 못하자 구름사다리와 늘임봉 등을 모두 철거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구름사다리는 추락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바닥에 모래나 고무판 등이 설치되지 않아 불합격됐다. 늘임봉은 기둥과 밧줄의 간격을 60cm 이상 두지 않아 기준에 미달됐다. 이 학교 관계자는 “기준에 맞춰 이들 놀이시설을 새로 설치하는 데 5500만 원이 든다”며 “예산이 부족해 결국 철거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놀이터 사고 예방을 위해 2007년 제정된 ‘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이 반발하고 있다. 이 법은 정부가 지정한 전문기관에서 검사를 받아 불합격된 놀이시설은 새로 설치하거나 이용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또 2년마다 검사를 받고, 손해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대상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물론 아파트단지 및 공원, 병원, 다중이용시설 등 5만5860곳에 설치된 모든 놀이시설에 적용된다. 시행시기인 내년 2월부터 이를 어길 경우 시도교육감 등은 철거명령을 내리거나 1000만 원 이하 벌금,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3월 말 현재 2만2090곳(39.5%)이 검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은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또 새 규정은 영국 등 유럽연합(EU)의 기준에 맞춰 놀이시설마다 안전거리를 확보하도록 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놀이터 면적이 좁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끄럼틀의 경우 반경 6m 이내에 다른 놀이시설이 있으면 안 된다.

게다가 놀이시설을 새로 설치하는 데 학교마다 수천만 원씩 들지만 비용은 학교가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대구시교육청은 1∼3월 초등학교와 유치원 209곳을 검사한 결과 168곳이 불합격됐다. 교체비만 43억 원이 필요하지만 예산이 없어 연차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놀이시설에 따라 최고 80만 원까지 드는 안전검사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검사기관이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등 전국에 단 2곳뿐이기 때문. 이에 따라 전국 시도교육청은 최근 행안부에 유예기간을 연장하고, 국고 지원을 건의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에서는 고육책으로 교체 대신 폐쇄를 선택하고 있다. 상당수 학교는 안전검사조차 받지 못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의 현실은 외면한 채 책상에만 앉아 만든 대표적 법안”이라며 “저학년 학생을 위해 놀이시설을 철거할 수도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놀이시설 규모와 재질에 따라 1000만∼6000만 원이 들지만 해당 시도교육청과 지자체가 지원할 수밖에 없다”며 “유예기간 연장 등은 조만간 열릴 국회 상임위에서 검토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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