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직원 97명 근무중 사이버 도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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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 도박자금 사건’ 계기 내부감사서 적발… 前現노조간부 13명도 포함

현대자동차는 전현직 노동조합 간부를 포함해 모두 97명이 근무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 도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19일 밝혔다.

현대차에 따르면 올해 4월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 묻혔던 110억 원대의 돈이 불법 도박자금이었던 것으로 밝혀진 뒤 현대차 내부에서 현장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불법 도박사이트에 접속한다는 제보가 감사실에 쇄도했다. 이에 따라 감사실은 즉각 조사에 착수해 도박 사실을 적발했다.

현대차는 아산공장 직원 35명을 사규에 따라 먼저 징계한 데 이어 조만간 울산공장 62명도 징계하기로 했다. 적발된 97명 가운데 13명은 대의원을 포함한 전현직 노조 간부이며 나머지는 일반 직원이다. 감사 결과 이들은 근무시간에 각 공장의 현장 반장실에 비치된 업무용 PC 등을 이용해 사이버 도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 현장 업무용 PC 이용 1회에 최고 1억원 베팅 ▼

1회 베팅 금액이 최고 1억 원에 이를 정도로 단순 게임 수준을 넘어선 사례도 있었다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사이버 도박에 큰돈을 걸었던 일부 직원은 고리(高利)의 사채를 써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가정불화로 이어지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는 “사규에 따라 감봉, 정직 등의 징계조치를 할 것”이라며 “경찰도 조사 중인데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해고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한 번이라도 사이버 도박을 했던 직원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사내 홍보와 계도를 통해 자정(自淨)에 나설 방침이다. 이번 기회에 불법 사이트 접속과 조기 퇴근 등 불성실한 근무태도를 바꿀 계획이다. 현대차가 이처럼 불성실 근무를 적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3월에도 일부 현직 노조 대의원이 회사와의 협의를 핑계로 일과 시간에 스크린골프장에 출입했으며, 2009년 1월에는 현대차 아산공장 대의원들이 울산에서 도박을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현대차의 이번 사태는 노조 전임자 수를 줄이는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 도입에 반발해 쟁의발생을 결의한 현대차 노조의 도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각 분야의 비리를 지적하고 현대차가 내부 비리를 문제 삼자 삼성은 의도치 않게 자정 노력을 선도한 형국이 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발 앞서 내부 비리를 질타하면서 삼성그룹의 감사와 인사담당자를 교체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 인적 쇄신 드라이브 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회장은 9일 “삼성테크윈에서 부정부패가 우연히 나와서 그렇지 삼성그룹 전체에 퍼져 있는 것 같다. 남의 다른 단체 이야기하기가 미안하지만 다른 데도 똑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재계 1, 2위 기업이 비리 척결에 나섬에 따라 다른 대기업도 ‘사정 분위기’를 탈 것으로 보인다. 울산 현대중공업 및 현대미포조선 임직원들이 협력업체 대표로부터 관행적으로 금품을 받아온 혐의로 전남지방경찰청의 조사를 받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은 사태가 일단락되면 강도 높은 재발 방지대책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2006년 1월∼2010년 9월 협력사에서 10억 원가량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대상에는 이 회사 임원급 인사 5, 6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고위 관계자는 “우리 사회가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부도덕에 둔감해진 것 같다”며 “전체적인 MRA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MRA는 ‘도덕재무장(Moral Re-Armament)’의 약칭으로, 1938년 미국의 프랭크 북맨 박사가 이 운동을 창시했다.

계열사별로 감사기능을 가동하고 있는 SK는 그룹 차원에서 윤리경영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온라인 비리제보 시스템을 도입한 LG그룹은 감사기능을 담당하는 ‘정도경영TFT’의 활동을 다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납품 관련 잡음이 일기 쉬운 기업들을 중심으로 단속을 강화하려는 태세다. 한 대기업 유통 계열사 관계자는 “내부감사와 별도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구매 담당자들이 부당한 요구를 하는지, 물품 선정을 이유로 대가를 요구하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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