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게이트]‘정책실패’ 저축銀 사태, 10년간 국회 속기록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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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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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금고→저축은행 개명’ 의원들 반대… 재경부선 “외국도 다 그렇게 한다” 일축

저축은행 부실 사태가 발생하기 수년 전부터 국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문제 제기가 나왔지만 금융 당국은 ‘면피성’ 대응에 급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국회의원은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 완화를 정부에 적극 촉구하기도 해 정책의 양 축인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 저축은행 부실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동아일보가 1일 금융 당국의 주요 저축은행 정책과 관련해 최근 10년간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구 재정경제위원회) 속기록을 분석한 결과다.

정부는 2000년 12월 1일 상호신용금고의 명칭을 저축은행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신용금고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같은 해 12월 19일 열린 국회 재경위 토론회에서 많은 의원들은 명칭 변경에 따른 시장의 혼란을 지적했으나 정부는 “외국도 그렇게 한다”고 일축했다.

당시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국민을 현혹시켜서 정현준 같은 놈 왕사기를 치도록 오히려 도와주는 것 아니냐? 이놈들(상호신용금고)의 로비 활동에 정부가 놀아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한국판 서브프라임사태 우려” vs “저축銀 자체해결 가능” ▼

이에 이종구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현 한나라당 의원)은 “많은 상호신용금고들이 차제에 상호은행이나 저축은행이나 이런 식으로 좀 바꾸어 달라 하는 것을 몇 년 전부터 얘기해 왔던 것이다. 일본도 다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6년 4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저축은행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이른바 ‘8·8 클럽’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열린 이날 회의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소속의 일부 의원은 저축은행에 대한 정부의 추가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오제세 의원(현 민주당 의원)은 “신협과 상호저축은행, 새마을금고와 같은 서민금융기관이 지불수단으로서 수표를 발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까지 그것이 금지되어 온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금융감독원장 겸임)은 “(수표 발행이) 허용됨에 따른 리스크가 무엇인지, 감독상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 속기록을 보면 저축은행 부실 사태는 ‘예고된 시한폭탄’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상호신용금고 →저축은행 명칭 변경… 예견된 재앙

상호신용금고가 상호저축은행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3월. 앞서 정부는 2000년 12월 1일 명칭 변경을 위해 상호신용금고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통과시켰다. 2001년 2월 12일 열린 국회 재경위 소위원회의 한 대목.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저축은행이라고 하면 시중은행으로 오해할 소지가 생기지 않느냐.”

▽이종구 재경부 국장=“‘저축’ 띄고 ‘은행’으로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

▽박 의원=“글씨만 붙여 쓴다고 일반 은행과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이용자가 (정확히) 알 수 있는 복안이 나와야 한다.”

▽정의화 한나라당 의원=“신용금고의 사금고화에 대한 얘기가 많다.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꾸면 일반 은행과 동일시할 텐데 보완 대책이 뭐냐.”

▽이정재 재경부 차관=“보완대책이라고 할 것은 없다. 저희가 법을 공표할 때 (일반 은행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겠다.”

▽정 의원=“자본금이 1000억 원인 곳(일반 은행)하고 자본금이 평균 40억 원인 곳(신용금고)하고 똑같이 뱅크(은행)란 말이다. 나중에 피해가 생기면 장관, 차관은 나가버릴 텐데 누가 책임지느냐?”

이어진 같은 해 2월 20일 재정위 소위 토론.

▽강운태 새천년민주당 의원=“그냥 저축은행 하면 대단한 은행 같으니 상호저축은행은 어떠냐?”

강 의원(현 광주시장)의 제안에 따라 상호신용금고는 상호저축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2010년 3월부터는 다시 법이 개정돼 그냥 저축은행이라고 표기할 수 있도록 됐다.  
○ 예금보호한도 5000만원으로 상향… 은행과 동급으로

與의원 “정부, 예금 부분보장 강행… 집단 도산 사태 벌어져”

정부는 2001년 1월 예금자 보호한도를 1인당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까지 높이면서 당시 상호신용금고와 은행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 서민이 아닌 큰손들이 돈을 맡기는 곳으로 저축은행의 성격이 바뀌는 시점이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조차 제도의 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2000년 12월 18일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 중 한 대목.

▽박병윤 새천년민주당 의원=“제2금융권의 취약성 때문에 예금 부분보장 제도를 강행하면 상호신용금고, 지방은행의 집단 도산과 외화 도피의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강행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예측은 아주 기분 나쁠 만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상호신용금고, 지방은행의 집단 도산 사태가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에 앞서 일부 의원은 2000년 ‘진승현 게이트’와 ‘이용호 게이트’로 상호신용금고가 어려워지자 예금자 보호 제도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0년 6월 21일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의 한 대목.

▽홍재형 민주당 의원=“예금 전액보장기한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원리금 2000만 원 한도의 예금 부분보장 제도로서는 현재 지방은행, 상호신용금고, 종금사로부터의 예금 인출이 가속화되리라 예상된다.”  
○ PF대출 영업 허용… 부실 결정타

의원들 “연체율 급등”… 금감위장 “14% →13%로 개선 추세”

2007년 6월 저축은행 업계의 ‘PF 대출 취급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부산저축은행처럼 PF에 전력하는 은행이 급증했고, 이는 ‘눈덩이 부실’로 이어졌다. 같은 해 9월 1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PF에 대한 문제점이 잇따라 지적됐으나 금융 당국은 “문제 없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김애실 한나라당 의원=“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지금 급격하게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금감원이 어떻게 이런 안이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답변해 달라.”

▽김용덕 금감위원장=“지금 전체적으로 연체율이 13%로 다소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금년 3월에 14%였다. 그래서 저축은행 PF 대출을 관리하면서 연체율도 다소 개선되는 그런 추세에 있다.”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금감위원장으로 오시기 전에 청와대에 계셨는데 마침 건설회사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묻는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부산의 건설회사들이 PF 자금 대출을 받는 것에 여러 가지 법률적인 검토나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제출했는가, 이런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 혹시 보고받으신 적이 있는가?”

▽김 위원장=“없다.”

1년 뒤인 2008년 9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저축은행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이 자리에서도 정부는 저축은행의 자정 능력을 강조하며 안이한 태도를 취했다. 당시 임승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저축은행 상황에 대해 이같이 보고했다.

▽임 처장=“저축은행에서 부실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갈 가능성은 저희들은 없다고 본다. 또 그렇게 확산될 가능성도 없고 단지 저축은행 자체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저축은행 자체의 경우에도 PF 대출이 앞으로 상당 부분 부실화된다 하더라도 대손충당금을 어느 정도는 쌓아놓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저희들은 생각한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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