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어떻게 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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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일단 지켜볼것”… 잇단 정책선회엔 떨떠름

청와대는 한나라당 새 지도부의 ‘반값 등록금’ 도입 움직임에 대해 23일 “당에서 갓 ‘발제’를 내놓은 수준이니 지켜보자”며 조심스럽게 반응했다. “한나라당 내부조차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은 단계”라는 참모도 있었다. 결론이 어찌 나더라도 초반부터 당청이 의견 충돌을 빚는 것처럼 비쳐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잇따른 정책변경 시도를 두고 “그동안 뭔가 크게 잘못했다는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다”며 불편해했다. 한 참모는 “(급식 보육 의료를 무상으로, 대학등록금은 절반으로 내리겠다는) 민주당의 3+1 무상시리즈에서 써먹은 정책을 왜 다시 들고 나오느냐”고 반문했다. “당이 일관되게 정책과 노선을 추진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주 발언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재정부 “기부금 稅공제, 세수감소 우려 2007년 포기”

기획재정부는 여당이 추진하겠다는 반값 등록금과 관련해 “추가 재원 확보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2013년 균형재정 목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기 위해선 4조9000억 원가량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여당이 반값 등록금 등 친서민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재원 확보방안 없이는 추진할 수 없다”며 “선거를 앞두고 여의도의 포퓰리즘 정책에 밀리면 2013년 균형재정은 달성하기 어렵다는 게 재정부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재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목은 대학기부금 전액을 세액 공제해 달라는 여당의 주장이다. 이미 2007년에 추진했다가 ‘나라 곳간’ 문제로 없던 일로 접었던 사안을 다시 꺼내든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소득공제 대상인 대학기부금을 세액공제로 바꾸면 세수가 크게 감소한다”며 “다른 기부금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교과부 “기부금 유인책에 기대… ‘반값’은 비현실적”

교육과학기술부는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추진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우선 대학 수입원에서 등록금 비중을 낮추기 위해 추진한 대학재원 다변화 방안이 탄력을 받은 데는 긍정적인 분위기.

교과부 관계자는 “대학 기부금을 늘리려면 기부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며 10만 원 이하 소액 기부금 전액을 공제해주는 방안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반값 등록금’이 현실을 외면한 공약(空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교과부 관계자는 “부담을 완화하는 수준이지 반값 등록금을 현실화하기는 불가능하다. ‘반값 등록금’이란 말 자체가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현재 전국 4년제 대학의 등록금 수입은 14조 원. 반값 등록금을 실제 추진하려면 7조 원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한나라당 계획대로 2조 원 이상 예산을 마련한다고 해도 저소득층 중심의 지원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계층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나온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대학 “정부 지원 늘어나면 간섭도 심해질까 걱정”

당정의 ‘반값 등록금’ 추진 소식에 대학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소액 기부금 세액 공제나 대학역량강화 사업 확대가 마냥 반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10만 원 이하 대학 기부금을 세액 공제하면 개인 기부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만 대학들은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본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 교수는 “대학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동문 충성도가 높은 주요 사립대나 효과를 볼까, 대다수 사립대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는 “우리 대학만 해도 본교에는 기부금이 들어오지만 분교는 그렇지 않다. 정책을 만들 때 몇몇 사립대만 볼 게 아니라 전체 대학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역량강화 사업을 확대하는 계획에도 걱정스러워하는 눈치이다. 한 지방 사립대 교수는 “지금도 대학을 선정한다며 여러 잣대를 들이대는데, 지원 사업을 늘리면 정부의 간섭이 또 얼마나 늘어날지 벌써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정부 지원으로 대학 재정이 안정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통제도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민주당 “우리가 제안땐 비난하더니… 진정성 있나”

민주당은 23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의 ‘반값 등록금 추진’ 발언을 환영하면서 이 정책의 ‘원조’는 민주당임을 강조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에 대해) 정말 의지가 있다면 6월 국회에서 구제역, 친환경 무상급식 등을 위한 민생 추가경정예산에 포함해 처리하자”며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모든 정책에 적극 지원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의 일환으로 반값 등록금을 주장할 때 ‘표(票)퓰리즘’이라고 비난한 게 한나라당이다. 이에 대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황 원내대표가) 부자 감세를 철회하자고 했다가 갑자기 반값 등록금을 말하는데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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