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근에 잡무경감?’ 토론방 누리꾼들 ‘들썩’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8일 05시 50분


코멘트
"우리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수학여행을 안 가는 학생들의 지도를 도서실 비정규직 직원에게 떠넘기더군요. 열정이 없는 교사가 많은데 잡무 경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필명: aaaa)"

"챙긴 촌지 액수를 자랑하고 대학 원서를 써주며 10만 원씩 받는 교사들을 적지 않게 봤습니다. 업무 경감의 의의에 공감하지만 교단에서 장사꾼 같은 교사를 몰아낼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필명: pofira)"

서울시교육청이 교원 행정 업무를 줄이는 정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최근 개설한 인터넷 토론방에 교사들의 잘못을 질타하는 글이 대거 올라와 시교육청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18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시교육청이 토론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개설한 '선생님의 주된 업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페이지에 올라온 350여개의 글 중 3분의 1 이상이 '행정업무를 잡무로 보는 것은 특권 의식' 등 교사를 비판하는 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시교육청은 '평교사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이 게시판을 열었는데 학교 행정직원들과 일반 시민이 몰리며 '업무 경감에 앞서 교원들이 무성의하고 비합리적인 업무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와 같은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학교 행정실의 전직 직원이라고 밝힌 한 사용자(필명: 승자는 결국 질긴 놈)는 "살인적인 행정 업무는 경력이 많은 교원들이 모든 일을 기간제 교원과 신참 교사에게 부당하게 떠넘기며 빚어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용자는 "수업 준비 이외의 모든 일을 잡무로 본다면 다른 직종 종사자들에게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 잡무경감만 주장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업무 분담부터 공정하게 하라"고 덧붙였다.

다른 사용자(필명: 실룩이)는 "교사의 특수성을 인정해도 교육과정과 관련된 행정업무까지 경감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이미 호봉산정과 방학 자율연수, 짧은 근로시간 등 특혜가 많은 만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행정 잡무가 줄어들어도 교육의 질이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았다.

'고기좋아'란 필명을 쓴 한 사용자는 교재 연구 기간인 방학 때 주변 교사들 중 공부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시간이 부족해 수업 준비를 못한다는 얘기는 핑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다른 사용자(필명: 마사이)도 "평소에도 오후 4시30분 '칼 퇴근'하고 시험날 일찍 마치는데다 방학과 재량휴업일 등으로 다른 직종보다 시간이 훨씬 많은데 학교 수업의 부실을 행정 일 탓으로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시교육청 측은 업무 경감 정책이 교원의 근무 환경을 지나치게 개선해주는 안으로 비치며 부정적인 여론이 예상치 못하게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고용불안 문제나 교육비리 등 여파로 '철밥통'이라고 여겨지는 교사에 대해 비(非)우호적 시각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정책의 핵심을 잘 알려가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토론방이 당초 취지와 달리 교사 성토의 장으로 변질돼 교사와 시민, 행정실 직원간 갈등만 부추긴다며 당장 폐쇄할 것을 촉구했다.

교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작년 교총 조사결과 초중고교의 공문 개수는 월평균 602¤642건이었고 교원 10명 중 6명은 공문처리 때문에 수업을 자율학습으로 대체한 경험이 있었다"고 밝혔다.

교총은 "게다가 최근 잇따라 도입된 차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학교회계시스템(에듀파인)도 오히려 업무량을 늘렸다는 게 학교 현장의 하소연인데 이런 상황은 교원 외에는 제대로 파악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교총은 "따라서 시교육청은 포털 토론방 운영을 즉각 중지하고 실명제가 적용되는 시교육청 홈페이지 게시판을 이용하거나 학교현장 방문조사 등으로 의견 수렴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토론방이 당초 취지와 달리 운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며 "취지와 맞지 않는 논의를 자제해 달라고 안내문을 붙이거나 아예 토론방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축 정책은 불필요한 서류작성 및 보고 작업을 최대한 줄여 일선 교원들이 학생지도와 교재연구에 집중하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에 따라 시교육청은 2014년까지 법령이 정한 필수 사업 외의 중앙 행정 업무를 대다수 없애고 학교별로 행정 전담 인력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디지털뉴스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