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軍의료]체중 40kg 줄었는데 두달넘게 “우울증”… 결핵균 뇌로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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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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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진료를 받다 사망하거나 의식불명에 빠진 장병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군 의료체계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해당 장병의 가족들은 군 병원의 오진과 늑장 진료 때문에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을 키웠다고 비판한다.

육군 21사단 66연대 소속 오동은 병장(22)이 몸에 이상을 느끼고 사단 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해 8월 말. 며칠째 속이 메스껍고 체중도 102kg에서 62kg으로 줄어든 오 병장을 검진한 군의관은 ‘중증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군의관은 오 병장을 데리고 간 중대장에게 일주일분의 우울증 약까지 처방했다.

이후로도 오 병장은 지난해 10월 중순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같은 증세를 호소했지만 사단 병원의 우울증 진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병세가 악화된 11월 초에야 국군 홍천병원을 찾은 오 병장은 군의관에게서 폐결핵일 수 있다는 소견을 들었고 얼마 뒤 폐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오 병장의 어머니는 “당시 병원을 찾아 의식을 잃은 아들을 걱정하는 내게 군의관이 ‘안정제를 투여해 2∼3시간 후면 깨어날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 병장의 병세는 더 악화돼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로 인근 강원 춘천시 한림대 성심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 측은 오 병장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 물을 빼내는 한편 뇌경색 위험도 커 혈관을 펴는 수술까지 했다. 이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 추가로 뇌수술을 받아 고비는 넘겼지만 오 병장은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엔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담당 의사는 오 병장의 가족에게 “폐결핵균이 뇌로 침투해 뇌의 30% 이상이 손상되는 바람에 회복이 힘들고 평생 이런 상태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결국 군 병원의 초기 진단 착오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병세가 손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고 가족은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육군 21사단 측은 “초진 당시 X선 촬영 등을 했으나 특별한 증상을 발견하지 못하던 차에 오 병장이 우울증 자가진단표를 가져와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정신과 진료를 권했고 이후 찾아왔을 때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보여 우울증 치료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당시 오 병장을 진료한 군의관의 해명을 듣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으나 군 당국은 “규정상 군의관이 언론과 직접 접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야간 행군훈련을 한 뒤 숨진 노모 훈련병(23)도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3일 새벽 20km의 야간 행군을 마친 뒤 부대로 복귀한 노 훈련병은 고열 증세로 부대 병원을 찾았지만 군의관이 환자 진료를 마치고 퇴근하는 바람에 제대로 진단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일병 계급의 의무병이 당직 군의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노 훈련병에게 해열진통제만 처방한 다음 부대로 복귀시킨 게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군훈련소 측은 처음엔 “의무병이 군의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임의 처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듭된 확인 요구에 “군의관이 직접 진료하지 않고 의무병이 해열제 처방을 한 게 맞다. 당직 군의관에게 보고했는지는 조사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노 훈련병은 고열 증세가 계속되고 병세가 악화되자 육군훈련소 지구병원에서 패혈증 의심 진단을 받은 뒤 민간병원인 건양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음 날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노 훈련병은 뇌수막염으로 인한 패혈증과 급성호흡곤란 증세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잠복기가 며칠에 불과한 뇌수막염의 특성을 고려하면 입대 후 병에 걸렸을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에 다니다 올해 3월 입대한 노 훈련병은 173cm, 70kg의 체격으로 현역 1급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입대 전 특별한 병을 앓은 적이 없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군 안팎에선 두 사건 모두 군의 미비한 의료 수준과 장병들의 의료 권리에 대한 군 당국의 안이한 인식 때문에 초래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군에서 장병들이 제때 진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등 피해를 보는 사례가 계속되는 한 ‘후진군대’라는 오명을 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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