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도 기업형 ‘진화’… 작년 5만4994명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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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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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롱 환자 73명 입원시켜… 병원장이 보험금 3억 챙겨

대형 보험회사에서 5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일한 김모 씨(56·여)는 고객 모집이 어렵게 되자 지인들에게 “보험료를 안 내도 되고, 보험금 일부도 줄 테니 보험에 가입하라”며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보험 영업에 나섰다. 사람들은 한 번 병원에 갈 때마다 통원치료비 3만 원을 받는
보험이다 보니 별 죄의식 없이 가입하기 시작했고, 김 씨는 손쉽게 23명의 고객을 모을 수 있었다. 김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병원장에게 허위 통원진단서를 발급받아 총 220여 회에 걸쳐 1억6600만 원의 보험금을 가로챘다.

보험금을 노린 기업형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종전에는 보험계약자 스스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기극을 벌여왔지만 최근에는 보험 모집인 등 보험 종사자들이 보험금을 편취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금융감독원은 7일 주요 기업형 보험사기 사례를 공개하며 소비자들에게 신고를 당부했다.

경기 군포시에서 정비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씨(47)도 수년간 보험금을 가로채왔다. 박 씨는 브로커 임모 씨(45)와 함께 인터넷의 차량 도색 관련 카페에 ‘공짜로 차량을 도색해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무료라는 말에 솔깃해 찾아온 고객들에게 ‘보험사 의심을 피하려면 여러 번에 나눠 보험 처리하라’고 조언까지 해줬다. 박 씨는 브로커가 가져온 차량 300여 대를 일부러 손상시킨 뒤 실제 사고가 나 수리한 것처럼 보험사를 속였다. 브로커에게 1대에 20만 원씩 소개비를 주는 대신 수리비를 높게 청구했지만 고객들은 ‘어차피 보험사가 내는 돈’이라며 문제 삼지 않았다. 김 씨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총 6억 원가량의 보험금을 중간에 챙겼다.

병원장이 직접 환자를 모집해 보험사기를 벌이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 소재 한방병원의 김모 원장(46)은 환자가 없어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잔꾀를 냈다. 브로커 격인 보험설계사 2명과 함께 속칭 ‘나이롱환자’를 모으기 시작한 것. 이들은 주로 생활이 어렵거나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적발된 73명의 가짜 환자 중 25명이 ‘새터민’ 출신이었다. 아픈 곳도 없는 환자들에게 허위로 입·퇴원 확인서를 발급해주거나 입원 일자를 더 늘려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원장은 건강보험금으로 3억 원을 챙겼고, 환자들은 민영보험금 명목으로 14억 원을 따로 가져갔다.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총 5만4994명이며 이들이 가로챈 보험금은 3467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보험사기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이나 관련법이 없어 처벌이 미약한 수준이다. 기업형 보험사기로 구속됐더라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기 피해는 결국 전체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전체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안인 만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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