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티 구스마오 “폐허에서 우뚝 선 한국 올때마다 동질감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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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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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파란 눈의 國母’ 커스티 구스망

2003년 발간된 커스티 구스망 여사의 자서전. 당시 대통령이었던 남편 샤나나 구스망 현 총리와 함께 찍은 것이다.
2003년 발간된 커스티 구스망 여사의 자서전. 당시 대통령이었던 남편 샤나나 구스망 현 총리와 함께 찍은 것이다.
섬나라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던 2002년 5월 20일. 축하연을 앞둔 호주인 커스티 구스망 여사(45)는 깊은 감회에 젖었다. 1990년 동티모르 땅을 처음 밟을 때만 해도 자신이 동티모르 비밀요원이자 혁명가의 아내가 될 줄은 몰랐다. 2002년 대통령 부인까지 된 그는 남편의 임기가 끝난 현재 여권 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남편은 2007년부터 총리로 재직하고 있다. 말레이족과 테툼족이 다수인 동티모르인은 구스망 여사를 ‘파란 눈의 국모(國母)’라고 부른다.

포스코청암재단 ‘2011 청암상’ 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방문한 구스망 여사를 22일 만났다. 2000년, 2002년, 2004년에 이어 네 번째 방문이다. 그는 “폐허에서 다시 우뚝 선 한국에 올 때마다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부인이 되기 직전인 2001년 동티모르에 알롤라(Alola) 재단을 설립해 동티모르 여성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일했다. 그의 명함에는 ‘강한 여성, 강한 국가(Feto Forte, Nasaun Forte)’라는 말이 적혀 있다. 알롤라 재단의 모토이기도 하다. 재단 이름은 1999년 동티모르 분쟁 당시 인도네시아 민병대원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던 14세 소녀의 이름을 딴 것.

22일 만난 구스망 여사는 “2000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며 “식민지 전쟁 민주화 등을 경험한 한국의 성공이 동티모르에 큰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22일 만난 구스망 여사는 “2000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며 “식민지 전쟁 민주화 등을 경험한 한국의 성공이 동티모르에 큰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지난 10년간 재단이 중점을 뒀던 분야는 가정폭력과 매매혼이 만연한 동티모르 여성의 권리 신장과 모유 수유 장려 운동. “나 스스로 동티모르에서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며 어머니와 여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그는 “매매혼 풍습이 남아 있는 동티모르에서 가정폭력은 동티모르가 넘어야 할 또 다른 장애물이었다”고 전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동티모르에서는 산모의 90%가 산파 없이 집에서 출산했고 더럽다는 편견에 모유를 먹이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 재단의 활동 덕분에 모유 수유 비율이 25%에서 48%로 늘었다.

남편과의 첫 인연은 1992년. 호주 멜버른대를 졸업한 평범한 여성이던 그는 26세 때 ‘돈을 벌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가 자카르타에서 영어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히 편지 번역 일을 맡게 됐는데 편지 내용은 인도네시아 등 외국에 동티모르 독립운동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쓴 당사자가 동티모르 독립운동가인 현재의 남편이었다. 이미 시사잡지 등을 통해 동티모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스무 살 연상인 남편과 글을 통한 인연을 이어가며 점점 사랑에 빠졌다. 1994년부터는 감옥에서 남편을 직접 만나 정기적으로 영어를 가르치며 사랑을 키워갔고, 그 자신도 ‘루비 블레이드’라는 암호명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존경했던 인물이었다. 카리스마 있는 혁명가로만 알았는데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출소 후 남편은 계속 혁명 활동을 했다. 2008년 2월에는 남편의 자동차가 총격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으며 가족 모두 납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알롤라 재단은 내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위해 여성의 정치 참여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혹시 남편에 이어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건 아닐까. 구스망 여사는 “내겐 정치적 야망이 아닌 활동가로서 열망만 있을 뿐”이라며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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