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사태 100일]허점투성이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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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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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처음엔 안이했고 중반엔 당황했고 막판엔 서둘렀다

#장면1=구제역이 경북을 넘어 경기 강원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지난해 말 청와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연설 원고 독회(讀會) 자리. 구제역 문제가 거론되자 일부 참모가 “구제역은 아예 넣지 말자. 신년연설이니 밝은 내용 중심으로 가자”는 의견을 냈다. 다른 참모들도 대체로 동의했다. 결국 1월 3일 이 대통령의 신년연설에선 구제역이라는 글자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장면2=1월 6일 이명박 대통령이 관련 장관들을 소집해 구제역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지시는 내렸지만 별도 장관회의를 주재한 것은 구제역 발생 확인(지난해 11월 29일) 후 40일 만의 일이었다. 소와 돼지 98만 마리가 도살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회의에선 축산 당국의 주장대로 일부 종자 돼지와 어미 돼지에게만 백신을 접종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발생 초기엔 안이했고, 중반부엔 당황했고, 막바지엔 서둘렀다.’

구제역 사태 100일에 대한 정부 대응 평가는 이렇게 요약된다. 청와대 내에서조차 “구제역 사태에 관한 한 아마추어 정부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라는 자조의 말이 나온다.

○ 사라져버린 지휘기능


위기상황에선 중앙지휘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구제역 대응을 위해서는 관련 부처 간 조율,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유기적 관계, 군의 활용 등 다각도의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컨트롤타워 기능은 낙제점이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결과적으로 346만 마리가 도살처분되는 ‘구제역 재앙’을 예감한 것은 지난해 12월 중순경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초기에도 긴장은 했지만, 12월 15일경 경기 파주의 구제역 소에서 항체가 형성된 걸 알게 됐다. 2주 안팎의 잠복기를 감안할 때 구제역이 이미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걸 알았다. (재앙의 조짐 같은) 불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황식 국무총리가 구제역 대응을 위해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처음 주재한 것은 그로부터 9일이나 뒤인 12월 24일이었다. 그 다음 날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경기 의정부시 구제역 상황실로 달려갔다.

구제역 발생 후 한 달 동안 청와대와 총리실은 우왕좌왕했다. 대법관 출신의 총리를 비롯한 정부 최상층에서는 누구도 전대미문의 구제역 확산 속도를 통제할 수 있는 전문성과 위기관리 능력이 없었다. 총리실 관계자들은 “구제역 대응은 기술적인 업무가 많아 총리실이 담당 부처보다 앞서서 지시하기가 어려웠다”며 정부가 상황을 장악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청와대 정책라인에도 축산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최중경 경제수석비서관은 구제역이 전국에서 창궐하던 지난해 12월 31일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내정 발표됐고 이후 1월 내내 경제수석 자리는 비어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처 간 혹은 당정 간 업무협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군 병력 차출 요청에 국방부는 처음엔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이 반대해 쉽지 않다”는 기상천외한 답을 내놓았다. 결국 발생 초기에 군의 주요도로 차단을 통한 확산 방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가축 사체를 대충 묻어놓는 바람에 침출수 우려가 이어지는데도 환경부의 역할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매몰 단계에서부터 지방환경청이 감시 감독을 철저히 했어야 했지만 환경부는 뒤늦게 환경재앙 운운하며 뒷북을 쳤다.

이 대통령이 친박(친박근혜)계인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을 강하게 질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강력한 힘을 실어주지도 않는 애매한 상황이 지속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농식품부 당국자는 “우리 부서 책임이 크다”면서도 “결과론이지만 군 동원, 지방 공무원에 대한 지시 등에 대해서는 유 장관에게 전권을 줬더라면 어땠을까 싶다”고 말했다.

○ ‘관행적 사고’에 막힌 청와대


이번 사태는 결론적으로 축산당국의 ‘판에 박힌 사고’와 이를 컨트롤하지 못한 청와대 총리실 등의 지휘 능력 부재가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경북 안동→경북도→농식품부라는 초기 보고체계가 잘 지켜지지 않은 점은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처럼 초기 신고가 누락되고, 경기 파주시 분뇨차량이 전국을 누비며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경우라면 즉각 기존 매뉴얼을 뛰어넘는 대응책을 찾았어야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상력 부재’라는 비판이 이래서 나온다.

구제역 발생 100일을 맞는 현 시점에서 청와대도 “이번 구제역 사태에 대한 대응은 크게 잘못됐다”는 내부 판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축산 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를 지적할 뿐 스스로 뭐가 문제였는지를 복기해 보려는 움직임도 잘 감지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구제역 대책 중간평가를 묻는 질문에 “아직 답을 내놓기 이르다”며 공개적인 답변을 피하고 있다. 오히려 도살처분 및 보상 과정에서 지방 공무원과 기업형 축산업자 사이의 유착의혹과 같은 문제를 거론하는 소리가 청와대에서는 더 크게 들린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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