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통째 복사’ 공포의 대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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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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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통장-주민번호 등 빼내 완벽위장… 인터넷서 실명 인증 받고 돈 챙겨


산부인과 의사 A 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수서경찰서로 출두하라’란 명령을 받았다. 한 인터넷 대출업체가 돈을 갚지 않는다며 그를 고소한 것. 업체는 “서울 모 대형병원 부교수인 A 씨가 강남구 도곡동에 아파트 2채를 소유하고 있는 재력가임에도 2000만 원을 대출받아 갚지 않고 있다”며 고소 이유를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 A 씨는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6개 대출업체에서 6600여만 원을 빌린 것으로 돼 있었다.

이런 사기는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본인 통장 등 사실상 A 씨의 모든 신상 정보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아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경찰은 이런 사기가 가능한 과정을 이렇게 추정했다.

범인이 유출된 A 씨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인터넷 등에서 주소와 직업 및 직장을 확인한다. 이를 이용해 범인은 가짜 사진을 붙여 위조 주민등록증을 만든다. 이어 위조 주민등록증으로 A 씨 명의의 대포통장과 휴대전화를 개설한다. 통장과 휴대전화는 본인이 개설해야 하지만 치열한 영업 경쟁 탓에 본인이 아니어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 초본과 등본까지 발부받아 완벽하게 A 씨로 ‘위장’한 용의자는 이제 인터넷 대출업체 사이트에 접속한다. A 씨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대포 휴대전화번호를 입력했기 때문에 실명 인증 절차도 문제없었다. 범인이 보낸 주민등록증 복사본과 등·초본, 대포통장 사본을 받은 대출업체는 당연히 확인 절차를 거친다.

경찰은 “개인정보 위·변조 과정에서 피해자가 부자라는 사실을 알면 집중적으로 대출을 받는 사건도 발생했다”며 “최근 서울 강남경찰서에는 A 씨가 당한 수법으로 밭 5256m²를 팔려던 B 씨를 노려 25억 원을 대출받은 일당을 구속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에서는 20만 원이면 주민등록증 위조가 가능하다”며 “주민등록증만 분실해도 이런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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