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고도제한으로 중단됐던 포스코 신제강공장 공사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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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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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軍한발씩 양보해 갈등 풀었다

“비행고도제한은 절대로 어기면 안 된다.”(국방부)

“국가기간산업과 지역경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경북 포항시와 포스코)

2008년 7월 착공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신(新)제강공장’의 비행고도제한 문제를 둘러싸고 1년 6개월간 줄다리기를 해온 국방부와 포스코, 포항시가 머리를 맞댄 끝에 드디어 조정에 성공했다.

국무총리실은 18일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열어 △고도제한 초과 공장 상단 부분 1.9m 철거 △기존 활주로를 공장에서 378m 더 떨어진 곳으로 이동 △정밀기계착륙장치 등 항공 안전장비 설치 △활주로 표고 7m 상향 등 4가지를 조건으로 이 공장의 공사 재개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활주로를 378m 옮기면 신제강공장 용지가 비행안전 5구역에서 6구역으로 변경(비행안전구역은 1∼6단계로 나뉘며 1단계가 제한이 가장 심함)돼 고도 제한 높이가 완화된다. 또 건물 상단 부분의 높이를 낮춤에 따라 건축 제한 초과 높이는 기존 19.4m에서 8.5m로 줄어든다. 현행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는 ‘관할부대장 등이 비행안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건축 제한 높이를 초과하는 건물의 설치를 허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활주로 인근 주민들이 확장에 따른 소음 피해 대책을 요구하며 반발해 이번 조정에 따른 후속 절차 진행이 순조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깎고… 옮기고… 만들고… 갈등해결 큰걸음▼


○ “머리를 맞대면 답이 나온다.”

포스코는 2008년 6월 포항시 허가를 받아 해군 6전투비행단이 이용하는 포항공항 활주로에서 2.1km 떨어진 지점에 총면적 8만4794m²(약 2만5700평), 건물 높이 85.8m인 신제강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건물 높이가 고도 제한 한도(66.4m)를 초과하자 군 당국이 공사 중지를 요청했다.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 국방부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은 포항시로서는 뒤늦게 위법 사항을 발견하고 2009년 8월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미 포스코는 1조3000억 원의 공사비용을 투입한 상태였다. 공정은 93%.

포스코와 포항시가 첨단 공장을 지으면서도 행정 절차는 부실하게 밟은 것은 ‘안일한’ 태도 때문. 포항시와 포스코 관계자는 “국가보안시설인 포항제철소 상공은 비행 금지 구역이어서 고도 제한 규정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정위원회 의뢰로 비행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한 한국항공운항학회는 “항공기 엔진 고장 등 비상시에 위험이 있을 수 있지만 대안을 마련할 경우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총리실은 “국가안보적 측면과 국가경제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했다”며 “안전성 확보 조치가 완료되면 현재보다 더 원활하게 군 작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총리실은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포항시와 포스코에 엄격하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 포스코는 활주로 이동, 토지 수용 등 1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안전성 확보 조치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부담하게 된다. 포항시는 이번 조치에 따라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주민들의 민원 처리 등 모든 행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총리실은 포항시에 행정·재정적 제재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포스코 윤용원 전무(성장투자사업부문장)는 이날 조정 직후 “최고의 철강공장을 만들어 그동안 걱정해준 포항시민과 국가경제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 인근 주민과 건설업계는 희비 엇갈려

공사 재개가 결정되자 지역 건설업계는 반색하고 있다. 포항지역 30여 개 전문건설사 소속 근로자 5000여 명은 1년 넘게 실직 상태에서 공사 재개를 손꼽아 기다렸다. 200여 개 협력업체도 마찬가지다.

반면 활주로 주변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조정안대로 활주로를 옮길 경우 동해면소재지에 가까워져 소음 피해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상훈 포항시의원(52·동해면)은 “제강공장 문제 못지않게 주민의 정상적인 생활권도 중요하다”며 “지금도 소음에 시달리는데 조정안대로 되면 집단이주 이외에는 대책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 롯데슈퍼타워, 서울시 하수처리장 둘러싼 갈등 해법 ‘천양지차’


롯데그룹은 올해 상반기(1∼6월) 초고층인 ‘롯데슈퍼타워’(123층·555m)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롯데슈퍼타워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이지만 현실화되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롯데그룹이 이 땅을 산 것은 1987년. 1994년 5월 서울시에 건축 가능 여부를 문의한 지 두 달 뒤 “비행안전구역 밖에 위치한 땅은 군용항공기지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고 1995년 도시설계안을 송파구에 냈다. 100층, 402m 높이로 건물을 짓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공군의 반대에 부닥쳤다. 이후 롯데그룹은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등 법적인 해결을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군과 서울시의 반대로 번번이 롯데슈퍼타워 건립을 못하다가 지난해 공군과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을 롯데그룹이 부담한다”는 내용으로 합의하면서 건축 절차가 시작됐다.

반면 경기 고양시 덕양구 현천동 일대 ‘서울시 난지물재생센터(하수처리장)’를 둘러싼 서울시와 고양시 간 분쟁은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시설이지만 고양시에 들어서 있어 고양시민들이 줄기차게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 안보-기업 이익 대립… ‘상생의 조화’ 좋은 선례로▼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
포스코와 국방부 간 이번 합의는 안보와 경제라는 대립적 가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간 지속돼온 갈등의 핵심 쟁점은 포스코 측이 신축 중이던 신제강공장이 고도제한 규정에 어긋나 인근 포항공항의 비행안전성을 해치게 된다는 점이었다. 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원회의 조정 결과 활주로 연장 이동 등 새로운 대안을 통해 포항공항의 비행안전성을 확보하면서 포스코 측은 수조 원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게 됐다. 통합적 대안을 통해 양측의 이해를 충족시킴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는 전형적 사례인 셈이다.

이런 상생적 해결은 무엇보다 국방부 측이 전처럼 고도제한 관련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실질적으로 비행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2롯데월드처럼 경제논리에 안보가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 합의내용이 기존 법규정이 요구하는 비행안전성을 확보했다면 그런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할 수 있다. 안보와 경제, 나아가 비행안전성과 재산권 및 기업 활동이란 이해관계는 그 자체로 충돌하지 않으며 얼마든지 상생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든 게 이번 합의의 소중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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