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구제역 살처분 강원도 축산농 19명 전화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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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묻은 구덩이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

“소 묻은 구덩이 속에 같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지요.” “우리 소 때문에 다른 집 가축까지 다 도살처분 당했으니 이웃들 얼굴을 어떻게 볼지….” “소잔등이 벗겨질 정도로 소독을 했는데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 모르겠어요.”

키우던 소와 돼지를 구제역으로 모두 도살처분 당한 강원도 축산농들은 하나같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 눈 감으면 어른거리는 소…불면의 밤 계속

동아일보가 10∼12일 강원도 구제역 발생 농가 29곳 가운데 19명의 축산농과 전화 인터뷰를 한 결과 14명이 잠을 설치고 두통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자식같이 소중하게 키우던 가축을 생매장한 죄책감과 생계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우가 구제역에 걸려 같이 기르던 개 60마리까지 도살처분 당했다는 춘천의 신모 씨(59)는 “새끼를 밴 개까지도 생매장을 해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횡성의 최모 씨(56)는 “아내가 두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갈 수가 없어 보건소를 통해 전달 받은 진통제만으로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구제역 파동이 가라앉아도 ‘다시는 축산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6명이 ‘현재 기분으로는 다시 축산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5명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나머지 8명은 ‘다시 축산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이 ‘마땅히 다른 할 일이 없어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홍천의 최모 씨(68)는 “겁이 나서 다시 키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축산농은 “다시 소 키우면 아내가 이혼하겠다고 할 정도로 반대가 심하다”며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밝혔다.

○ “삶의 기반 잃고 어떻게 살아가나”

구제역이 발생한 축산농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13년째 축산에 전념하다 이번에 한우 280여 마리를 도살처분 당한 철원의 김모 씨(58)는 “보상금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손해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1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종자를 개량하며 좋은 소를 키워왔는데 그런 부분은 보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씨는 또 “구제역이 지나가 키울 송아지를 다시 들인다 해도 30개월은 지나야 내다 팔 수 있을 텐데 그전까지는 현금을 쥘 수 없어 걱정이 태산”이라고 덧붙였다. 젖소 90여 마리를 잃은 횡성의 최모 씨(56)는 “6개월 전부터 우유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보상금을 받아도 빚이 많아서 살 길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소를 키우기 위해 대량으로 구입한 사료도 버려야 할 판이라며 걱정했다. 당분간 소를 키울 수 없는 데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여서 사실상 반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우 130마리를 잃은 횡성의 엄모 씨는 “25kg 130여 포대와 1500만 원 상당의 조사료가 남아있는데 처리가 마땅치 않다”며 “구제역 발생 농가의 사료를 누가 가져가겠냐”고 한숨지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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