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에듀투어]조선중기까진 남존여비 없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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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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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 똑같이 재산상속 받고… 제사 의무도 함께 지고…


내 아이 '창의력 체험' 어디로 떠나볼까

《대입이나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 과학고 등 고교 입시 전형에서 입학사정관을 사로잡는 ‘창의적 체험 활동’은 어떤 걸까? 특히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수많은 체험활동 중 어떤 활동이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지, 또 이런 활동을 구체적으로 교과와 어떻게 연계해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초등교과와 긴밀하게 연계된 보물 같은 체험활동 장소가 숨어있다. ‘신나는 공부’는 ‘내 아이 창의적 체험 어디로 떠날까’라는 주제로 입학사정관전형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의 포트폴리오로 활용할 만한 ‘에듀투어’ 사례를 연재한다. 기사는 현지에서 체험활동을 하는 주인공 ‘훈이’의 가족대화 형식으로 전개된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외암민속마을은 500여 년 전 형성된 예안 이씨 양반마을이 보존되어 있는 곳. 기와집, 초가집, 돌담이 잘 보존되어 있고 대문에 아직까지 ‘참판댁’ ‘건재고택’ ‘감찰댁’ ‘참봉댁’과 같은 택호가 붙어있다. 외암민속마을로 여행을 떠나 초등 6학년 때 배우는 ‘조선시대 양반과 서민의 생활’을 생생하게 체험해 보자.

충남 외암리 외암민속마을은 500여 년 전 조선시대 양반이 살던 기와집, 초가집, 돌담까지 잘 보존되어 있어 초등생의 사회교과와 연계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충남 외암리 외암민속마을은 500여 년 전 조선시대 양반이 살던 기와집, 초가집, 돌담까지 잘 보존되어 있어 초등생의 사회교과와 연계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포인트 1 안채는 왜 사랑채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까?

“양반 하면 충청도 양반을 꼽아유∼. 외암민속마을은 충청도 양반들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이어유. 우리가 재밌게 봤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도 이곳에서 찍었다네유.”

엄마는 벌써부터 말꼬리에 “유∼”를 붙여 충청도 말투를 흉내 냈다. 충청도 말투는 양반 팔자걸음 걷듯 느릿하게 이어지는 맛이 특징이다.

마을 어귀에 들어선 훈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날아온 기분”이라며 흥분했다.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마을이 이뤄졌고 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가면 샛길이 마치 나뭇잎의 그물맥처럼 뻗어있다.

마을 가운데에는 중요민속자료 233호인 ‘건재고택’이 있다. 18세기 말에 건립된 집이다. 대문에 들어서니 사랑채가 보였다. 사랑채에는 ‘주련(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이 기둥마다 붙어있다. 주인의 취향이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안주인이 집안 살림을 맡아 하는 안채는 사랑채에서 중문을 통과해야 나온다. 중문을 넘어서도 바로 안채를 볼 수 없도록 작은 담이 가로놓여 있다. ‘내외담’이다. 담을 지나서야 비로소 안마당으로 접어들 수 있다. 여자들의 생활은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돼 있다. 훈이는 궁금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떨어진 곳에 살았을까?’

“조선시대는 유교를 숭상했잖아. 핵심은 삼강오륜이고 이 중에 부위부강(夫爲婦綱), 부부유별(夫婦有別)이 있어. 남편과 아내는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집 안에서도 엄마, 아빠의 생활공간이 구분됐던 거야.”

집 안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었다. 대문 입구의 문간채는 주로 하인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행랑채’라고도 한다.

포인트 2 담은 왜 흙이 아닌 돌로만 지어졌을까?

마을 구경에 나섰다. 거리는 돌담으로 이어졌다. 집을 짓거나 논밭을 일구면서 나온 돌을 자연스럽게 쌓았다.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만 이용했다는 것이 특징. 자연에서 건축 재료를 가져오는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큰길가의 담장은 높았지만 샛길의 담장은 낮은 편이었다.

“엄마, 참봉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많이 해주셨죠? 여기가 참봉댁인가 봐요.”

훈이가 안내판을 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참봉댁은 다른 기와집과는 달리 ‘한 일(一)’ 자 형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참봉은 조선시대 종9품, 최하직 벼슬이다.

“그땐 부와 명예를 얻는 길은 관리가 되는 것뿐이었어. 그래서 말단 관리라고 하더라도 사회에서 보면 상류층에 속했지.”

외암민속마을은 당시 분위기와는 달리 남성과 여성이 비교적 평등했던 곳이었다고. 조선 중기까지 아들과 딸이 동등하게 재산을 상속받고 제사도 같이 모셨단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은 어떻게 생겼나요?”

“조선 후기에 성리학의 영향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본격화되었다고 해. 이때부터 남성중심사회가 되었지.”

마을 곳곳에 초가집도 보였다. 볏짚지붕, 싸리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 돌담으로 이뤄진 전통 민가다. 뒷산에서 흐르는 물을 마을로 끌어내려 방화수로 이용하고 있었다. 풍수지리상 뒷산의 강한 불기운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연을 이용한 조상의 지혜가 돋보였다.

조옥남 ‘특목고 명문대 보낸 엄마들의 자녀교육’ 공동저자조옥남▼3녀 1남의 어머니 조옥남 씨는 세 딸을 각각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진학시켰습니다. 요즘은 중학교 1학년인 늦둥이 아들과 전국 곳곳을 여행하며 교육적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조 씨는 세 딸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데 체험여행이 큰 도움이 됐다고 믿습니다.○돋보기로 보는 외암민속마을

▶ 교과와 연계된 체험활동 목표

-조선시대 마을의 특징 알아보기

-전통마을 체험을 통해 조상들의 생활모습 이 해하기

-조선시대 사회규범 이해하기

▶ 자녀와 부모가 함께 할 만한 추천 활동

-조상들은 어떻게 자연을 생활에 이용했는지 설명하기

-조선시대 양반의 일과 상상해 말하기

-조상들이 사용한 생활도구 찾아보기

-전통가옥과 현대건축물 비교해 장단점 찾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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