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과의 전쟁]한숨짓는 축산농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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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소도 내다팔 길 막막”

“연말연시는 물론이고 설 대목도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지요.” 강원 횡성군 횡성읍에서 한우농장을 운영하는 조원용 씨(45)는 한우를 보면 한숨뿐이다. 도축장이 폐쇄된 데다 가축 이동 제한으로 사실상 매매가 금지된 상태. 구제역 종식 선언 때까지는 당분간 현금 구경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그래도 구제역 파동 직전 일부 한우를 처분한 조 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보통 횡성에서는 32∼33개월 자란 소가 등급을 잘 받는 편이어서 대부분 이때 출하하지만 매매 금지로 이만큼 자란 한우를 내다팔지 못하는 농가들이 수두룩하다. 이때를 놓치면 오히려 등급이 떨어지고 마리당 200만∼300만 원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조 씨는 “우리 마을에만 한우 450마리를 키우는데 이 가운데 10% 정도가 출하 적령기를 맞고도 이를 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4월 사상 최대 구제역으로 가축을 집단 매몰한 인천 강화군 축산농들도 24일 추가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깊은 시름에 빠졌다. 강화군에서는 4월 선원면 금월리의 한우 농장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뒤 1개월 사이에 총 227개 농가, 3만1277마리(전체 우제류 가축의 46.5%)의 우제류 가축이 도살처분됐다. 그 뒤 구제역이 잠잠해지면서 다시 가축을 기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구제역이 재발하면서 ‘이제 강화에서 젖소 돼지 등 가축을 기르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주민 윤모 씨(55)는 “봄에 선원면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가축이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두 도살처분되는 것을 봤다”며 “이제는 겁이 나서 가축 기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도박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지 소 값마저 하락해 축산농들은 한숨을 쉬고 있다. 28일 전남도에 따르면 암소(600kg 기준) 산지 값이 48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암소 값은 10월 20일 540만 원, 구제역 발생 직전인 지난달 하순 503만 원에 거래됐다. 수소(600kg 기준) 값은 현재 468만 원이지만 한 달 전에는 480만 원이었다. 전남 장흥에서 20년째 한우를 키우고 있는 김모 씨(59)는 “구제역 공포가 커지는 상황에서 산지 소 값이 kg당 9000원에서 8000원으로 급락했다”고 하소연했다.

축산농뿐이 아니다. 연말연시 대목을 노리던 한우고기 음식점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각종 모임이 자취를 감추고 인체에 무해한데도 사람들이 고기 소비를 기피하는 탓이다. 횡성에서 한우고기집을 운영하는 김종만 씨(37)는 “예약돼 있던 송년회마저 모두 취소됐다”며 “모든 업소가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횡성 한우는 그동안 구제역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강원도의 대표 한우로 10년 이상 쌓아온 명품한우의 명성에 타격을 입게 됐다. 고명재 횡성축협 조합장은 “한우는 횡성의 주축 산업인데 한우 기반이 무너지면 횡성 경제도 붕괴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양평개군한우, 안성맞춤한우, 임금님표이천한우, 광주한우600 등 경기지역 한우브랜드도 명성에 치명상이 우려된다. 또 충북 충주지역 한우 브랜드인 ‘농협 참한우’(옛 충주 참한우)의 경우 백신 접종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청정한우 간판을 당분간 내려야 할 위기에 처했다.

횡성=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무안=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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