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알아야 전략 세운다]<3>외교의 사각지대-민간 외교

  • Array
  • 입력 2010년 1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유학생 겉돌고 관광객 실망… ‘친한파 중국인’ 육성 손놓나

《 정부가 외교를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정부와 민간단체, 국민이 모두 나서서 외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시대다. 민간외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바로 유학생과 관광객이 차지한다. 특히 바로 이웃인 중국에서는 유학생과 관광객이 많이 온다. 이들을 친한파(親韓派)로 만드느냐, 아니면 혐한파(嫌韓派)로 만드느냐에 따라 미래의 한중 관계가 달려 있다. 》
■ 유학생, 한국어 서툴다고 수강 제한… “등록금만 챙기려 입학시켰나”

서울에서 2년째 유학 중인 양(楊)모 씨(21)는 강의 때마다 거듭되는 조(組)모임이 정말 싫다. 한국인 학생들이 떠듬떠듬 말하는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수업과제를 일방적으로 분할한 뒤 맡기는 바람에 심하게 다툰 뒤부터 학교생활마저 짜증이 난다. 불만은 점차 쌓이지만 이를 어떻게 풀 방법도 모르고 또 굳이 풀 필요도 못 느낀다. 그는 “한국인 친구를 못 사귀면 중국인 친구와 지내면 되고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 그만”이라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도중 학과 선배가 강요하는 ‘깍듯한 한국식 예절’을 이해 못해 주먹질을 당하거나 서툰 한국어 탓에 이른바 ‘왕따’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한국에 품었던 선망과 기대는 유학 기간 중 반감과 혐오로 바뀌는 셈이다.

최근 한국으로 유학 오는 중국인은 엄청나게 늘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4년 1만988명에 불과하던 중국인 유학생은 올해 10월 말 현재 6만7031명으로 6년 만에 6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전체 외국인 유학생 8만9616명 중 약 75%가 중국인이다. 2004년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확대 종합방안’을 만들고 각 대학이 국제화에 발맞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문턱을 낮춘 결과다. 특히 입학 정원 확보가 어려운 지방대는 중국인 유학생이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은 중국인 유학생의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지난달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소장 문흥호 교수)가 발표한 ‘한중 양국 상호 유학생 실태와 개선 방안’에 따르면 중국인 유학생은 허술한 학사관리와 부실한 문화교류, 교수와 동료 학생의 차별에 불만이 많았다.

특히 중국인 유학생의 한국어 능력 문제는 꽤 복잡하다. 유학생 입장에서는 한국어 능력에 따른 수강 제한에 불만이 많다. 연세대 1학년 장(張)모 씨(20)는 “한국인 학생과 똑같이 450여만 원의 등록금을 내고 한국어가 서투르다는 이유로 수강학점을 3학점으로 제한당하니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은 “입학을 시켜놓고 학점을 제한하면서 한국어를 배우라고 어학당을 다니게 하는 것은 우리를 미끼삼아 돈을 벌자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한국어 능력에 따른 유학생의 수강 제한을 지지한다. 그래야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미국의 대학도 유학생을 입학시킨 뒤 어학 능력이 떨어지면 수강할 수 있는 학점에 제한을 둔다”고 말했다.

학과 공부와 일상생활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 계명대는 중국센터를 설치하고 한족 출신의 전문가를 고용해 중국인 유학생을 살핀다. 단과대마다 중국인 유학생을 전담하는 유학생 조교를 둔 것도 호응이 높고 수업 외에 지속적으로 한중 학생 사이의 교류를 유도하는 것도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러나 계명대처럼 각별한 신경을 쓰는 대학은 많지 않다.

한국인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중국인 유학생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다. 문흥호 교수는 “중국 유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졸업 뒤 한국에서 최소 1년 반, 2년이라도 취업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핏 한국의 청년실업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는 듯 들리지만 관점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 문 교수는 “그 정도 경력을 가져야 중국에 가서 ‘한국통’이라고 인정받고 한국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 관광객, 싸구려 관광코스에 “우리가 짐짝이냐”

2001년 48만1782명에 불과했던 중국인 관광객은 올해 10월 말 현재 161만9944명으로 늘었다. 올해 말까지 중국인 관광객은 200만 명으로 늘 것으로 보인다. 10년 만에 4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중 중국인 비율은 2000년 8.3%에서 올해 10월 21.9%로 배 이상으로 늘었다. 최근엔 단체여행뿐 아니라 개인 또는 가족 단위 여행도 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위한 가이드와 해설사 수는 급증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의 가장 큰 불만은 이른바 ‘싸구려 관광’이다. 관광업체들은 체재비를 줄이고 관광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료 관광지를 주로 찾고 경기 의정부 등 수도권의 허름한 숙박시설과 값싼 단체 식당을 이용한다. 무리하게 끼워 넣은 쇼핑 일정에 싸구려 음식과 숙박이 겹치면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불만이 계속 쌓이는 것.

동아일보와 KOTRA가 올 5월 중국인 관광객 541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관광에서 6000위안(약 108만 원) 이상 쓰겠다는 응답이 31.6%였다. 중국인 관광객은 ‘싸구려 관광’을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관광업계의 잘못된 편견인 셈이다. 실제로 남대문시장이나 롯데백화점, 명동에서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손’은 중국인이다. 곽상섭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차장은 “무엇보다 저가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에 대한 정부의 제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민간단체, 단체 50개 넘는데 ‘네트워크’ 구축 못해

양국 간 민간 교류를 표방하는 단체는 50개가 넘는다. 최근 신설된 단체도 많지만 1992년 한중 수교 전에 설립돼 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도 있다. 기업 총수나 전직 고위 공직자, 중견 학자가 이끌고 있어 화려한 면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단체들이 양국 간 민간 교류에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기억하는 전문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민간 교류는 형식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교류 단체가 교류 경험과 중국과 관련된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데 인색하다. 최근엔 우후죽순처럼 교류 단체가 늘고 있지만 관심과 활동이 비슷해 중복 교류가 많아지고 있다.

최규종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세계지역본부장은 “민간단체가 민간 외교의 일익을 담당하고 정부의 효율적인 자문그룹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교류를 통해 축적한 경험 및 정보와 네트워크를 분야별로 공유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한국서 무시당한 경험담, 사이버공간 증폭… 반한감정 실체는 ▼

2008년 5월 쓰촨(四川) 성 대지진 때 한국 누리꾼의 악플 사건, 베이징(北京) 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유학생 충돌 사건, 중국과의 양궁 결승전에서 한국 선수에 대한 중국 관중의 야유, 2007년 겨울아시아경기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이른바 ‘백두산 세리머니’.

한중 누리꾼이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격렬하게 다툰 사건들이다. 양국 언론이 이른바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의 근거로 든 사건이기도 하다. 그럼 중국 젊은이들의 반한 감정은 과연 실체가 있는 걸까, 있다면 어느 정도일까.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달 전국 15개 대학 1220명의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토대로 펴낸 ‘한중 양국민 간 우호정서 저해 원인 연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6%가 ‘반한 정서’라는 말을 들어봤고 41%는 반한 정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반한 정서는 중국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계층에서만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이에 대해 “반한 감정이 문제라면 중국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서울 Y대 2학년 스(史)모 씨는 “주점에서 시킨 안주에 고추장이 딸려 나왔는데 주인이 중국에서도 고추장을 먹느냐고 물었다. 그 고추장 용기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여 있었는데 말이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마(馬)모 씨는 “지진이나 홍수 같은 사고가 날 때마다 한국 TV에 방재가 잘 안된 후진적인 모습만 부각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박소진 박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혼합된 사회에서 살던 중국 젊은이들은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그룹 등 문화콘텐츠 때문에 한국인이 미국에 대해 가졌던 ‘아메리칸 드림’과 비슷한 생각을 품는다”고 지적한다. 한국에 대해 애초에 깨지기 쉬운 허상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대부분의 중국인이 이들을 통해 한국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인터넷에서의 중국 유학생 등의 경험담은 곧바로 한국을 평가하는 하나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중국에 비판적인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이들이 번역해서 중국 포털사이트에 올리면 곧바로 한중 누리꾼 사이에 갈등이 야기된다. 또 이들이 한국의 대학에서 부닥친 언어 장벽과 부실한 학사관리, 교수와 학생들의 차별 대우 경험담을 올리면 반한 및 혐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구자억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기관평가연구센터 소장은 “이제 한중 양국은 실시간으로 접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상대를 폄하하거나 헐뜯는 말 또는 글을 자제하고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아끼는 자세를 가져야만 좀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동영상= 다문화 대안학교 설립 시작부터 ‘삐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