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 말소’ 이길용 前기자 아들 이태영씨의 ‘한맺힌 思父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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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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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10년간 납북자 문제 외면… 죽기전 아버지 소식 들을수 있길”

이태영 6·25납북인사가족회 이사가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 이사의 부친인 이길용 씨는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으로 6·25전쟁 중납북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태영 6·25납북인사가족회 이사가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 이사의 부친인 이길용 씨는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으로 6·25전쟁 중납북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6·25전쟁 중 납북된 사람들의 문제를 외면한 것에 분노를 느낍니다. 내가 죽기 전에 아버지 소식을 한 조각이라도 들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이태영 6·25납북인사가족회 이사(69)의 눈빛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의 부친은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으로 6·25전쟁 중 납북된 이길용 전 동아일보 기자이다.

6·25전쟁 중 납북자는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은 13일 ‘6·25전쟁 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비로소 시작됐다.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납북자가 고인이 됐거나 종적을 찾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는 “현 정부의 노력에 감사하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 토로했다.

6·25가 일어났을 당시 이 이사는 9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부친이 납북됐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서울이 점령된 직후 아버지가 북한군에 연행됐다가 곧 풀려나와서 가족들이 모두 안심했다”며 “그러다가 7월 17일경 갑자기 집(서울 성북동) 근처에서 북한 정치보위부에서 다시 아버지를 붙잡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북측이 항일투사인 아버지를 체제선전에 이용하려고 납치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측이 이 전 기자를 서대문형무소에 임시 수감했던 것은 확인됐지만 그 이후의 행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평양까지 끌려갔다가 탈출한 황신덕 중앙여중고 창립자(작고)에게서 “서대문형무소에서 북측으로 떠날 때는 같이 있었는데 평양에 도착해 보니 안 보이더라”는 소식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이 이사의 가족들도 전쟁 중에 고초를 겪었다. 당시 애국부인회 지부장을 맡고 있던 어머니는 남편이 납치되고 얼마 뒤 북한군에 끌려갔다. 하지만 “6명의 어린 자식들만 남아 집안이 풍비박산 나게 됐다”고 통사정을 해 겨우 풀려났다. 중학교 5학년(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형도 좌익 청년들에게 고문을 당해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았다.

이 이사는 “아버지가 납북된 뒤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던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지만 가장을 잃은 정신적 충격이 더욱 힘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동아일보에 같이 계셨던 분들을 비롯한 언론계 인사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을 수 있었고 무사히 학업도 마쳤다”고 회고했다. 이 이사는 1961년 경향신문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뒤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서 체육기자로 일하면서 아버지의 유업을 이었다.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기자 재직 시절 아버지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는 “1973년 외국에서 열린 한 체육행사에서 북측 대표단을 만나 아버지의 행적을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며 “1990년 남북통일축구 행사 때 북한을 방문했던 정동성 체육부 장관에게 부탁해 아버지 소식을 알아봤지만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납북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6·25전쟁 납북자 문제를 등한시한 것에 대해 “무성의를 넘어 무책임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전쟁 중 납북자와 월북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가 전후 납북자 문제만 다루며 허송세월했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미국은 6·25 때 숨진 미군 병사들의 유해라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우리 정부는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본 납북자들을 위해 도대체 무슨 노력을 했느냐”고 반문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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