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는 기부의 샘]‘사랑의 온도계’ 3.4도… 작년 이맘때의 7분의 1도 못채워

  • Array
  • 입력 2010년 12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13일 서울 중구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관 외벽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계’ 눈금이
바닥을 가리키고 있다. 올해는 임직원들의 횡령사건으로 기부자들의 시선이 싸늘해지
면서 이곳 한 곳에만 설치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3일 서울 중구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관 외벽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계’ 눈금이 바닥을 가리키고 있다. 올해는 임직원들의 횡령사건으로 기부자들의 시선이 싸늘해지 면서 이곳 한 곳에만 설치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앞. 1시간 동안 수백 명의 시민이 역 인근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 3곳을 지나쳐 갔지만 ‘빨간색’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구세군본영 김해두 사관(50)은 지난해 같은 시기 광화문역 구내에 설치된 자선냄비 한 곳에는 하루 평균 30만∼40만 원의 성금이 모였지만 올해는 20만 원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
광화문 자선냄비 3곳을 돌아다니면서 트럼펫 공연을 하는 김 사관은 “구세군 전체 모금액이 기업 기부에 힘입어 다소 증가하고 있지만 개인 기부액은 오히려 줄고 있어 걱정”이라며 “모금단체 횡령사건 여파 때문인지 성금을 넣으려는데, 말리는 시민도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줄어든 기부, 이유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일대에 있는 쪽방촌도 온정의 손길이 얼어붙었다. 평소 도움을 주는 교회에서 쪽방촌 어르신들을 위해 쌀이나 김치 등을 가져다줄 뿐 기업이나 일반 시민들의 기부가 크게 줄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것. 엄병천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사건 이후 후원이나 기부행위를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며 “기부가 줄면 없는 사람은 더욱 서러워진다”고 아쉬워했다.

올해 말 들어 기부가 급감한 것은 공동모금회의 성금 횡령 비리에 일반 시민들이 크게 실망한 영향이 크다. 이달 1일 시작한 공동모금회의 ‘사랑온도’는 13일 현재 3.4도에 그쳤다. 목표 금액의 3.4%만 모았다는 의미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13.8도였다. 이에 따라 1999년 이후 12년간 연속 달성한 ‘사랑온도 100도’ 기록이 올해는 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회사원 김성원 씨(32)는 “내가 낸 돈이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으니 당연히 모금함에 돈을 내는 일이 꺼려진다”고 했다.

지난해 말 수백억 원씩 기부했던 대기업들도 지갑을 닫았다. 공동모금회 측은 “13일 현재 대기업 중 기부한 곳이 한 곳도 없다”고 밝혔다. 2008년과 2009년 같은 기간에 삼성,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기부가 이어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나눔 모금의 속성이 큰 줄기가 트이면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며 “지난해 기부를 주도했던 기업들이 공동모금회 비리 여파로 몸을 사리면서 기부문화 자체가 움츠러들었다”고 분석했다. 연말에 터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도 일정 부분 기부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 이제는 개인 기부 활성화해야

국내 기부문화의 중심을 ‘기업’에서 ‘개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공동모금회가 1999년부터 작년까지 모은 총 기부금 1조9118억 원 중 기업 기부는 63%, 1조2035억 원에 달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개인 기부 비율이 70% 이상에 이른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도 자신의 이름으로 개인 기부를 하는 반면 한국은 기부를 ‘세(稅)테크’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아 기업 기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업은 경기 침체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기부금 액수가 꾸준히 증가하기 어렵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공동모금회가 모금한 기업 후원금은 1768억 원으로 2007년(1805억 원)보다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 후원금은 869억 원에서 935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모금단체 비리 영향도 있지만 북한의 연이은 도발 등 각종 사회적 이슈로 기업 기부가 위축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신혁 어린이재단 대외협력실장은 “기업 기부는 경기침체 등 외부 요인에 쉽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며 “개인 기부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모든 모금단체의 숙원”이라고 말했다.

○ 투명한 기부문화 정착 기회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투명한 기부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의견도 많다. 국내에서는 ‘아름다운재단’이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 재단은 2000년 출범 때부터 기부 회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1000만 원 이상 고액 기부자에게는 기부금이 어떻게 배분되었는지를 보고하며, 홈페이지를 통해 1년 단위의 감사자료 외에 매달 기부 수익과 지출에 대한 회계자료도 공개한다. 정경훈 아름다운재단 팀장은 “직원들의 월 급여까지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투명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1원짜리 하나라도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알 수 있어야 투명성 시비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세금으로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