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4대강 내홍’ 확산]교회 내부갈등 이례적 표출… “정치 휩쓸리나” 신자들 착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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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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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교단 결정은 4대강 사업 반대가 아니다”라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79)의 발언에 대해 ‘추기경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순명(順命)과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가톨릭교회 내부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정 추기경은 8일 저서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 간담회에서 4대강 개발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주교회의의 결정은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아니다. 난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지만 잘 개발해 달라는 취지로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4대강에 대한 판단은 전문가들의 몫이지 종교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정구사)은 10일 성명을 내고 “추기경이 주교단의 합의정신과 단체성을 깨뜨렸다”며 “시중에 나도는 4대강 난개발과 명동성당 불법개발이 한통속이라는 소문이 자꾸만 솔깃하게 들린다”고 정 추기경을 비난했다. 이어 이 성명은 “추기경이 대중의 흥분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이는 교회의 불행”이라고 주장했다.

13일에는 추기경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함세웅 문정현 신부, 김병상 몬시뇰 등 정구사에서 활동 중이거나 은퇴한 신부 10여 명은 ‘시대를 고민하는 사제들의 기도와 호소’라는 성명을 통해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연대를 보증해야 할 추기경이 주교단 전체의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적 혼란과 교회의 분열을 일으킨 것은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며 “(추기경은) 동료 주교들에게 그리고 평신도, 수도자, 사제 등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퇴의 결단으로 그 진정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에는 전국 교구에서 25명이 서명했으며 서울대교구에선 4명이 참여했다.

이 행사의 사회를 맡은 함 신부는 ‘용퇴’에 대해 “추기경 직은 자의적으로 사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서울대교구장 직에서 물러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겸 문화홍보국장인 허영엽 신부는 “정책적인 비판에 대해서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대화한다는 것이 추기경의 자세”라며 “추기경께 이 내용을 보고했지만 다른 말씀은 없었다”고 전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사제들이 정진석 추기경의 4대강 관련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함세웅 신부(왼쪽)와 문정현 신부 등 25명이 서명한 성명을 통해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직 용퇴를 주장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3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사제들이 정진석 추기경의 4대강 관련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함세웅 신부(왼쪽)와 문정현 신부 등 25명이 서명한 성명을 통해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직 용퇴를 주장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에 앞서 허 신부는 이날 오전 8시경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근 논란에 대한 정 추기경의 입장을 설명했다. 허 신부는 3월 주교단 성명에 대해 “추기경이 일부 성당에서 사제들이 4대강 반대가 주교단의 결정이라고 말해 신자들이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는 보고를 받고 깊은 우려를 해 왔다. 그래서 주교단 결정은 우려이지 4대강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밝힌 것”이라며 “추기경은 4대강 찬반은 전문가들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추기경은 이 문제가 신앙의 문제가 아니기에 신자들의 양심에 평화를 줘야 한다는 사목적 의도로 발언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명동성당 개발은 20여 년 전 김수환 추기경 때부터 진행했다. 법의 절차를 지켜 준비했고 4대강 사업과 명동 개발을 연결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의 발언에 대한 정구사의 성명과 일부 신부의 추기경 용퇴 주장은 신자들 사이에서도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정구사 홈페이지에는 “정치적 주장을 하면서 왜 교회 이름을 앞세우나” “왜 정부는 비판하면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나”는 등 비판의 글이 게재됐다. 서울대교구의 홈페이지에도 여러 의견이 오르고 있다. 한 신자는 ‘사제들이 추기경 용퇴 촉구한 것은 한국 가톨릭 초유의 사태’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의 가톨릭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책임이 필요하고 자리에 연연하지 마라”고 썼다. 반면 다른 신자들은 “추기경이 무슨 그렇게 대죄를 지었다고 물러나야 한단 말입니까?” “(정구사가)많은 신자들이 수긍하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교회 전체를 혼란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가톨릭 내부에서는 추기경 용퇴 주장은 교회 내부의 일을 사회문제로 비화시키지 않아 온 교회 전통을 벗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한 관계자는 “갈등을 치유하고 소외된 이웃을 보듬어야 할 교회의 내부적인 갈등이 바깥으로 표출돼 몹시 착잡하다. 이번 사안이 어떻게 정리되든 교회는 큰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구사와 몇몇 신부의 성향을 감안할 때 추기경 용퇴 주장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도 나온다. 1974년 유신체제 아래서 출범한 이 단체는 가톨릭의 공식 기구가 아니라 내부 모임의 하나로, 전체 4000여 명의 신부 중 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단체는 1970, 80년대 초반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지나친 정치투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함 신부는 2004년 “김수환 추기경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사회의 인권과 개혁을 위해 사제들과 학생들이 단식할 때는 찾아가지도 않던 분이 정치적 목적으로 단식하는 한나라당 모 의원을 찾아갔을 때 사실인가 눈을 비볐다”고 비판했다. 올해 8월에는 정 추기경의 사목관에 대해 “법에만 집중하면 법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믿음이 법을 넘어서야 한다”면서 “교회법에서 교구장은 만 75세가 지나면 직책을 내놓게 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 추기경은 교회법에 따라 2006년 교황청에 사임서를 제출했으며 수리 여부는 임명권자인 교황의 권한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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