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수능의 전설, 신기하게도 딱 들어맞네”

  • Array
  • 입력 2010년 1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부산의 한 고교에서 갈아마시면 명문대에 합격한다고 알려진 전설의 비석
부산의 한 고교에서 갈아마시면 명문대에 합격한다고 알려진 전설의 비석
《서울의 한 여고에는 학교 내 5층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일명 ‘도전, 엘리베이터!’라 불리는 전설. 외부 손님 전용으로 가동되는 이 엘리베이터에는 ‘학생 이용 절대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학생이 이용하다 걸리면 벌점을 받는지라 평소 이 엘리베이터에 오를 엄두를 내는 간 큰 학생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입시철인 11, 12월이면 이 엘리베이터에 몰래 타는 고3 수험생들이 급증한다. 심지어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직후 시간엔 수험생들로 만원이 된다니! 벌점을 감수하고라도 수험생들이 엘리베이터에 용감히 오르는 이유는 뭘까? 알고 보니 이 엘리베이터에는 전설이 있다. 다음은 이 학교 3학년 김모 양(18)의 전언. “이 엘리베이터를 100회 이상 타면 서울대에 합격한다는 전설이 내려와요. 그래서 100회를 채우기 위해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핑계를 대고 교실에서 나와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을 마구 오르내리는 친구도 있어요.”》

대입수험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고등학교에는 내려오는 전설이 특히 많다. 학생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이들 학교전설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부분 ‘대입’이나 ‘수능’과 관련돼 있다는 것. 특히 요즘 같은 대학입시철에는 기상천외한 학교전설이 학생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들 학교전설은 대부분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수험생들의 불안하고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낸 피조물인 셈이다.
비석을 갈아 마시면 명문대에 합격할지니…


부산의 한 고교에는 비석에 얽힌 ‘명문대 합격비법’이 전설로 내려온다. 학교 정문 옆 커다란 비석. 비석을 자세히 보면 칼로 긁힌 듯한 자국이 많다. 왜?

이 학교 1학년 김모 양(16)은 “비석을 뾰족한 물건으로 긁어 돌가루를 낸 뒤 물에 타서 마셔요. 그러고 나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비석에 대고 절을 세 번 하면 명문대에 합격한다는 전설이 있어요”라며 “특히 학교이름이 새겨진 큰 ‘대(大)’자 부분을 가루 내 마시면 효험이 더 크다고 전해져요”라고 말했다.

비석을 갈아 마신다니! 돌가루를 먹으면 당장 몸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학교기물을 훼손하는 부도덕한 일임이 명백할 터. 하지만 오늘도 비석을 갈아 마신다. 전설과 더불어 내려오는 선배들의 ‘성공신화’ 때문이다.

지난해 수능을 30일 앞둔 늦은 밤. 이 학교의 한 수험생이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몰래 교실을 빠져나와 비석 있는 곳으로 향했단다. 손에는 미리 준비한 커터 칼이 들려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이름이 새겨진 높은 곳까지 손이 닿지 않아 당황했다. 천신만고 끝에 돌가루를 얻은 수험생은 돌가루를 물에 타 마시고 세 번 절을 했다. 중위권 대학에 갈만한 성적이던 그는 그해 수능에서 ‘대박’이 나 서울 Y 대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마를 닦고 또 닦아라!
이마를 닦으면 명문대에 합격한다는 전설이 있는 서울 한 여고의 신사임당상
이마를 닦으면 명문대에 합격한다는 전설이 있는 서울 한 여고의 신사임당상

한편 서울의 한 여고에는 교문 옆 신사임당상의 이마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이 신사임당상의 이마는 유난히 매끈하게 번쩍인다. 도대체 왜?

몇 년 전 성적이 별로 좋지 못했던 고3이 있었다. 그는 수능 날이 다가올수록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 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안절부절하던 그의 눈에 돌연 신사임당상이 들어왔다. ‘혹시 신사임당상의 이마를 닦으면 신사임당이 도와주시지 않을까’라는 별난 생각이 돌연 들었다는 그 수험생.

그날 밤 사다리를 구해 올라가 신사임당상의 이마부위를 닦으며 ‘제발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신사임당도 정성에 감동한 것일까? 그 수험생은 신기하게도 자기 성적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었던 K 대학에 합격했단다.

소문은 빠르게 학교 내에 퍼져 나갔고 그날 이후 고3 몇 명은 신사임당상에 올라가 이마를 닦기 시작했다.

이 학교 정모 양은 “신사임당상에 올라가 이마를 닦은 학생 중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많다”면서 “전설을 믿는 수험생이 많다보니 수능 한 달 전이 되면 수위 아저씨가 신사임당상 옆에 사다리를 아예 갖다 놓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꿈나무에 꿈을 매달다
고3 수험생의 소원을 담은 이름표가 매달린 강원 원주여고 ‘예지꿈나무’
고3 수험생의 소원을 담은 이름표가 매달린 강원 원주여고 ‘예지꿈나무’

강원 원주여고에는 고목에 얽힌 전설이 있다. 학교가 문을 연 1945년부터 학교 정문에 자리 잡은 이 나무의 이름은 ‘예지꿈나무’. ‘예지’란 ‘지혜롭고 밝은 마음과 생각’이라는 뜻의 교훈인 동시에 고3들이 쓰는 건물의 이름이다.

수험생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예지꿈나무에 매달면 명문대에 합격한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것. 이 학교 2학년 이민지 양(17)은 나무의 효험을 확신하게 된 사례를 소개했다.

“제가 1학년이던 지난해에 가깝게 지내던 당시 고3 선배의 얘기인데요. 평소 공부를 잘 했지만 시험 때만 되면 긴장하는 탓에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해 걱정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등하굣길에 예지꿈나무를 보면서 자기 이름이 적인 종이가 매달려 있는 모습을 확인하면 왠지 마음이 편해졌대요. 그 덕분인지 지난해 수능에서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거죠. 결국 서울 S 대에 합격했어요.”(이 양)

지금도 한 아름 반 정도 둘레에 높이 7m가 넘는 이 예지꿈나무에는 원주여고 3학년들의 이름표가 매달려있다. 혹시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름표가 바람에 날아가진 않을까? 대입 성공의 꿈을 담은 이름표가 바람에 날아가면 상심이 클 텐데 말이다. 이 양은 “문제없다”고 확신했다.

“지난해부터 2년째 예지꿈나무에 이름표를 매달았지만 떨어지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요. 얼마 전에도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모든 이름표가 무사했지요. 고3 선배들의 입시가 끝날 때까지 이름표는 계속 붙어 있을 거예요. 꿈을 위해 달려온 선배들, 모두 이번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 믿어요. 파이팅!”(이 양)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