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낙태법 재검토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무조건 범죄로 몰면 여성들이 더 위험해져경제형편-원치않는 임신 무시… 원정낙태도

여성·노동·사회·진보 단체 및 진보 정당들로 구성된 ‘임신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가 올 8월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유와 권리개선을 주장하며 임신중지(낙태)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여성·노동·사회·진보 단체 및 진보 정당들로 구성된 ‘임신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가 올 8월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유와 권리개선을 주장하며 임신중지(낙태)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A 씨는 올 7월 결혼을 전제로 1년여간 만나온 B 씨 동의 없이 배 속의 아이를 지웠다. A 씨는 “애인이 강간을 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고 주장했다. A 씨가 아무 말 없이 병원을 다니고 식사도 무리 없이 해 아기가 잘 크고 있는 줄만 알았던 B 씨는 하루아침에 아기를 잃은 것은 물론이고 특수강간범으로 검찰에 고소를 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B 씨는 불법낙태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를 찾아 “여자친구가 여성단체에서 상담을 받은 뒤 합법 낙태 사유에 강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핑곗거리를 만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A 씨는 끝까지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결국 B 씨 손을 들어주며 특수강간혐의를 무혐의 처분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1일 낙태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현행 법조항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법낙태 반대 단체들은 태아 인권과 무분별한 낙태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낙태는 무조건 범죄인가”

인권위는 21일 낙태문제를 놓고 토론회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구상해 내년 업무계획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낙태를 범죄화하는 입법에 개정 권고를 하고 있다”며 “부득이한 이유로 ‘원정낙태’를 가는 사례까지 나오는 가운데 낙태를 무조건 범죄로 몰면 여성이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형법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우생학적 장애 등 모자보건법상 규정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료인 모두를 처벌토록 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의 진정으로 촉발됐다. 민우회는 올 6월 불법낙태 시술기관에 대한 신고체계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은 보건복지부의 ‘불법 인공 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이 여성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는 이달 19일 차별시정위원회를 열어 논의를 거듭한 끝에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형법상 입법 관련 내용이 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진정을 각하했다. 그 대신 내년부터 낙태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필요하다면 낙태 관련 현행법에 대해서도 정책 검토를 하기로 했다.

○ “불법낙태 급증” 우려도

불법낙태 반대 운동을 벌여온 ‘프로라이프 의사회’ 최안나 대변인은 “인권위가 낙태 관련 현행법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태아 인권이 국가가 보호할 가치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1985년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잉태된 순간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호받는다’고 돼 있다”며 “인권위가 낙태문제를 재고한다면 이런 인권에 대한 의식 자체도 재고하겠다는 뜻임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낙태 허용 기준을 낮추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이유를 들고 와 적당히 기준에 맞춰 낙태를 하려는 여성이 크게 늘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도 국내 불법낙태 건수가 하루 1000여 건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한다고 하면 불법낙태가 급증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