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야생동물 구조센터 정동혁 수의팀장의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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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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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치인 고라니, 척추-골반-다리 모두 부러져 수술 불가능…
“이젠 고통 없는 세상으로…” 눈물의 안락사

《야생동물도 사고를 당한다. 나무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도로를 지나다 차에 치여 다리가 골절된다. 덫에 걸려 인대가 끊어진다. 8월 초 개소된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지리산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전남 구례군)는 ‘응급상황’에 빠진 야생동물들을 24시간 구조·치료하는 곳이다. 방사선 촬영기 등 각종 첨단 의료시설도 갖추고 있어 센터 개소 이후 멸종위기종 1급 수달, 2급 삵, 천연기념물 소쩍새,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등 총 47마리를 치료했다. 이 센터 소속인 정동혁 수의팀장(33·사진)의 24시를 들여다봤다.》

○ 9월 16일-‘눈물을 참았던 순간’

오전에 하동군청에서 연락이 왔다. 고라니(사슴과)가 차량과 충돌한 것을 보고 한 시민이 신고를 한 것. 현장에 출동하니 고라니는 도로 한쪽에 누워있었다. 조심스레 접근했다. 야생동물은 인간이 바로 접근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부림치거나 도망가는 과정에서 부상이 악화된다. 자극을 덜 주기 위해 최대한 뒤쪽으로 돌아서 접근했다. 1m까지 접근한 후 막대기로 건드려봤다. 부상을 당한 동물은 쓰러져 있다가도 사람이 접근하면 벌떡 일어나 덤벼들기 때문이다.

우선 고라니 눈을 수건으로 가렸다. 야생동물은 시야가 가려지면 심적으로 안정된다. 고라니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복부와 입, 눈, 코에서 출혈이 있었다. 보통 모든 응급도구를 총동원해 출동한다. 담요, 수건, 구급상자(마취약, 항생제 등), 마취총, 보호 장갑, 동물을 못 움직이게 하는 포획용 막대기는 필수. 아픈 곳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달리 동물은 상태 파악이 안 되다 보니 최대한 준비를 많이 해 나갈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운반용 상자. 너무 크면 이송 중 상자 안에서 몸이 움직여 상처가 악화된다.

센터로 이송해 X선 촬영을 하니 척추, 골반, 다리가 모두 부러졌다. 수술이 불가능해 안락사를 시키기로 했다. 약물을 혈관에 주입하기에 앞서 마취를 했다. 최대한 고통 없이 죽게 하기 위해서다.

○ 8월 5일-‘두려움을 극복했다’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 정동혁 수의팀장이 8월 5일 올무에 걸린 멧돼지를 구조하기 위해 마취 후 청진기로 건강상태를 진찰하고 있다.사진 제공 지리산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 정동혁 수의팀장이 8월 5일 올무에 걸린 멧돼지를 구조하기 위해 마취 후 청진기로 건강상태를 진찰하고 있다.사진 제공 지리산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
순찰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리산 남산마을 인근에 멧돼지가 올무에 걸려 있다는 것. 현장에 가보니 다행히 올무가 멧돼지 목이 아닌 오른발에 걸려 있었다. 멧돼지는 미친 듯이 발버둥쳤다. 광분한 멧돼지에게 받히면 크게 다친다. 수놈(400kg)은 잘 발달한 어금니로 사람을 물기도 한다.

옆쪽으로 돌아서 한 걸음씩 접근했다. 두려웠다. 15m까지 접근하는 데 20분이 걸렸다. 올무에 걸린 채로 멧돼지가 몇 m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했다. 마취 총을 꺼내들었다. 나무가 우거져 명중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마취총(근육용)을 아무 데나 쏘면 안 된다. 대퇴부, 어깨 등 근육이 많은 부위에 정확히 맞혀야 한다. 부상을 당해 흥분한 상태에서는 마취총을 맞아도 안정된 상태에서처럼 흡수가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엉덩이와 대퇴부에 한 방씩 쐈다. 멧돼지가 푹 쓰러졌다. 마취됐다고 바로 접근하는 것은 금물. 몽롱한 상태에서 잠시 쉬려고 누워 있는 경우 사람이 접근하면 일어나 달려든다. 마취상태를 확인한 후 올무를 벗겼다. 소독하고 항생제를 투입했다. 긴장된 하루였다.

○ 7월 21일-‘나를 엄마처럼 따르던 살쾡이’


야생동물은 어미를 잃거나 먹이가 부족해 탈진한 상태로 구조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석 달 전 한 시민이 지리산 인근 서시천에서 살쾡이 새끼를 데려왔다. 어미를 잃어 방황하다 탈진한 상태였다.

링거액을 공급해줘야 했다. 1개월 정도 된 살쾡이는 크기가 손바닥만 해 혈관을 찾기 어려웠다. 더구나 몸 상태가 안 좋아 혈관이 수축된 상태. 근육 밑에 링거를 꽂았다. 이날부터 어린 살쾡이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숙직실에서 재우고 우유를 줬다.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먹이를 줬다. 치료 중인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참 어렵다. 방사를 고려해 자연 상태에서 구할 수 있는 먹이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의사들은 병아리를 구하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구마 줄기, 칡넝쿨 등을 구해오기도 한다. 3개월이 지나 손바닥만 하던 살쾡이는 강아지만큼 커졌다. 방사를 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살쾡이는 마치 강아지처럼 사람들을 따르게 됐다. 방사를 해도 자연 적응이 안 돼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살쾡이를 서울대공원에 인계했다. 정이 많이 들었는데….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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