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살인-상해 형량 반토막 ‘어이없는 법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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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처벌법 고치다 자구 누락… 적용대상-양형범위 되레 축소돼
강간상해범 ‘특강법’ 처벌 못해

법무부와 국회가 법률 개정 과정에서 특정강력범죄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실수를 해 강간살인, 강간상해죄에 대한 형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12일 밝혀졌다.

법무부와 법제처가 함께 만든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개정안은 올해 3월 31일부터 시행됐다. 내용은 그대로 두되 어려운 법률 용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고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개정안을 만들면서 일부 자구(字句)를 빠뜨리는 바람에 강간상해와 강간치사죄가 특강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형량이 줄어드는 실수를 범했다. 법안 심사와 심의 및 통과를 맡은 국회도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종전 특강법은 강간치상과 강간치사를 무조건 특정강력범죄로 분류했다. 3년 안에 특정강력범죄를 두 번 이상 저지르면 형량이 두 배로 늘어나고, 10년 안에 같은 범행을 다시 하면 집행유예 선고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시행되자 대법원은 강도상해죄로 복역하고 출소한 지 9년 만에 강간상해죄로 기소된 이모 씨(38)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특정강력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 2심 재판부는 이 씨에게 기존 특강법을 적용해 실형을 선고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종전 특강법 제2조는 특정강력범죄의 적용대상을 ‘흉기나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2인 이상이 합동하여 범한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준강제추행, 미수범, 미성년자 간음·추행의 죄 및 강간 등에 의한 치사상의 죄’로 삼았다. 강간치사와 강간치상은 흉기나 공범 수에 상관없이 특정강력범죄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법무부와 법제처는 이 조항에서 ‘기타’를 ‘그 밖에’로, ‘2인’을 ‘2명’으로만 고치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 문장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미성년자 간음·추행’ 다음에 적힌 ‘의 죄 및’이라는 자구가 삭제됐고, 이 때문에 강간치상과 강간치사죄도 흉기를 소지하거나 2명 이상이 저지른 경우에만 특강법 적용 대상이 됐다. 김 씨는 흉기 없이 홀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특강법으로는 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법률전문가들이 모인 법무부와 법제처, 국회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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