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딸들, 다 어디로 갔나]<下>후배들이여, 여자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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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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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리더십… 프로정신으로 무장…상황은 반드시 좋아진다

1990년대 대기업에 입사해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관리자의 자리에 오른 4명의 열혈 여성이 11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여자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왼쪽부터 하은희 LG전자 차장, 한명화 삼성전자서비스 과장, 이지애 삼성생명 차장, 이종욱 국민은행 차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990년대 대기업에 입사해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관리자의 자리에 오른 4명의 열혈 여성이 11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여자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왼쪽부터 하은희 LG전자 차장, 한명화 삼성전자서비스 과장, 이지애 삼성생명 차장, 이종욱 국민은행 차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여성 근무 여건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1990년대 대기업에 입성해 중간 관리자로 올라선 여성들은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똑똑한 여자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여성 직장인 4명이 11일 퇴근 후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식당에 모였다. 각계의 여성 리더들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모임인 ‘WIN(Women In Innovation)’에 참여한다는 공통점뿐, 얼굴도 이름도 몰랐던 이들은 여성 직장인의 애환을 나누다 금세 끈끈한 동료가 됐다. 》
이들은 먼저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일곱 살, 여섯 살 두 아이의 엄마인 이지애 삼성생명 차장은 “내가 임신할 당시만 해도 한창 일할 시기에 연달아 둘을 낳는 게 눈치가 보이는 분위기였다”면서 “지금 우리 회사는 발마사지기와 최고급 유축기, 개인용 오디오를 갖춘 모성보호실을 만들 정도로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부 여자 후배들이 여전히 인사, 홍보, 마케팅 등 폼이 나는 일만 하려고 한다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자기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명화 삼성전자서비스 과장은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했는데 엔지니어 업무로 출발해 고객 상담, 직원 상담, 기업문화 등 계속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됐고 그에 맞춰 공부를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이 누적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됐다”면서 “사원 시절 많은 분야를 두루 겪어야 관리자가 될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을 유념하라”고 말했다. 금융계에서도 업무가 힘들기로 유명한 ‘법인영업’을 자처했다는 이지애 차장은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고 힘든 일, 여자가 없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목표를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이종욱 국민은행 차장은 “고졸로 은행에 들어와 업무와 대학 공부를 병행하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최고 실적을 내자는 목표를 세워 주말도 반납한 끝에 전국 4등까지 올라섰다”면서 “이어 차장 이상만 할 수 있는 직원 교육 강사를 목표로 설정했고 결국 고속 승진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도전을 좋아해서 국내 대기업에서 출발해 일본 벤처기업, 미국 유학,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두루 거친 하은희 LG전자 차장은 “여자들이 남자보다 경력 개발에 수동적이고 네트워킹에도 약한 것 같다. 한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더라”라며 “대기업은 업무를 정해주다 보니 더 수동적이기 쉬운데 단기, 중기, 장기로 목표를 만들어 경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경력개발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라는 팁도 나왔다. 회사 지원을 활용해 사내 외국어 교육,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MBA), 이화여대 리더십 교육, WIN 행사 등을 소화한 이지애 차장은 “하루에 두 시간밖에 못 잘 때도 있었지만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파악하고 이를 위해 회사가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잘 찾아 활용했다”면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놓으면 일정 수준에 다다른 순간 회사가 더 관리해주고 발탁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자 선배의 역할모델에 목말랐다는 이들은 멘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지애 차장은 결혼과 출산을 겪은 대리 시절 생면부지의 외국계 회사 여성 임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할 정도로 역할모델을 찾는 것이 절박했다고 한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이 내 얘기를 들어주고 조언해 주는 것이 정말 힘이 됐다”면서 “회사 안과 밖에서 각각 조언해 줄 멘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 차장은 “여자들이 배워야 할 여자 선배가 없어 남자 선배를 따라하다 보니 더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건 우리보다 먼저 시행착오를 겪어서인지 개인 시간을 할애해 후배들을 이끄는 여성 관리자가 많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후배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킹맘인 이종욱, 이지애 차장은 여느 여성들처럼 육아 애환이 많았지만 “프로페셔널하게 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했다. 이지애 차장은 “직장에서 수시로 자녀와 통화하거나 아이의 스케줄을 고민하면서 동료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일하는 엄마는 전업주부 엄마와 같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말은 철저히 아이들과 체험활동이나 숙제를 하면서 보낸다는 그는 “함께하는 시간의 양보다 같이 있을 때 아이에게 몰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중학생 아들을 둔 이종욱 차장 역시 “아이가 나에게 워커홀릭이라고 하면서도 ‘나도 엄마처럼 은행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산교육이 된다는 자부심이 든다”면서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가사, 직장에 무리하게 욕심만 내면 불만이 쌓이고 자기 비하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는 점차 여성이 일하기 좋은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근무시간 유연제 등 제도들이 급변하고 있으니 결혼과 육아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종욱 차장은 “결혼 초기에는 남편과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가사, 육아를 성공적으로 나눠 하게 됐다”면서 맞벌이 부부는 가사 분담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과장은 “가사로 고민하는 후배들을 상담해 보면 남자는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여자는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둘 다 이런 편견을 떨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는 여성의 소통 능력과 감성적인 면이 확실한 장점이 될 것이라는 밝은 전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기 위해 소통하는 힘과 부드러운 리더십을 키우라고 조언했다.

이지애 차장은 “직장 생활 초기에 ‘철의 여자’가 되려고 성향이나 감정까지 남자인 척하는 시행착오를 거쳤다”면서 “그런 강박관념을 버리고 누나, 엄마의 마음으로 주변인을 섬기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 차장은 “기업들도 여성이 공동체에서 잘 행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 과장은 “요즘 회사마다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트위터를 하는 등 소통을 화두로 삼고 있다”면서 “칭찬, 시상, 대화에 익숙한 여성들의 강점을 부각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생겨나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끝을 맺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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