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公正’을 말하다]<中>10가지 제언-이것부터 바꾸자

동아일보 입력 2010-09-08 03:00수정 2010-09-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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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그런거지? 반칙엔 가차없이… 나는 태생부터 루저? 기회는 차별없이
《‘공정한 사회’는 압축성장을 해온 한국 사회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온 가치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공정 사회를 향해 뚜벅뚜벅 전진해온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시대는 훨씬 많은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본보가 제언한 ‘공존’을 위해서도 공정성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물론 대통령이 한 마디 했다고 한국이 한 번 만에 공정 사회로 점프하지는 않는다. 공정 사회로 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분야별 10가지 방안을 제시해본다.》

1 특권층의 반칙 자신에게 엄격하게, 자식에겐 더 엄격하게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별채용’ 사건이 밝혀지면서 ‘현대판 음서제’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본인과 자식이 군에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대학입시를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는 나라이지만 자녀 부정입학도 거의 매년 드러난다. 어느 사회에나 상류층은 있다. 받는 혜택이 큰 만큼 일반인보다 훨씬 엄격한 도덕률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이들의 병역기피, 탈세, 재산도피 등 반칙 행위는 더욱 큰 공분의 대상이 된다. 국민 통합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6일 당내 비공개회의에서 “대학 수시모집에서 대학교수, 관계자들의 자제들이 불공정하게 입학한다는 얘기가 많았다”면서 대학 입학 분야에서도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다. 그렇지만 취업, 병역, 대입 등에서 특권층의 반칙이 드러나면 공정 사회 기초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칙과 특권이 통하지 않는 투명한 사회가 돼야 비로소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도덕적 기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2 지역주의 인사 권력 바뀌면 물갈이… 지연보다 능력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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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바뀌면 정부부처나 공기업을 포함해 사회 각 분야에서 메가톤급 물갈이가 일어난다. TK, PK, 영포회 등 지역을 바꿔가며 특정 지역 출신이 중용되고 권력이 강화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권력과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민간기업도 권력자와 같은 지역 출신을 요직에 발탁한다. 권력 누수를 줄이고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겠지만 출신지역이 개인의 재능-노력-성과를 압도해서는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뿌리내릴 수 없다. 지역주의 인사는 또 관료의 정치화를 가져오며 거시적으로는 지역갈등의 씨앗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파괴적이다. 또 각종 지역관련 정책의 공정성에 대한 불필요한 의혹을 불러온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언제부터인가 ‘지역주의 인사=권력 교체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등식이 통용되고 있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지연과 학연 등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업무능력 위주의 인사,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인사가 정답이다.

3 법 앞에 불평등 여전한 유전무죄 인식, 법에 대한 불신 불러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는 어김없이 위장전입 등 각종 불법 의혹이 등장한다. 위장전입은 이제 인정하고 사죄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위장전입으로 처벌받은 국민은 5000명이 넘는다. 고위공직자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이 따로 있는 셈이다. 검찰권 행사도 정권 교체에 따라 반대 정파에 칼을 대는 일이 다반사다. 검찰권을 효과 좋은 통치수단 쯤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학장은 “(법원이) 자의적 증거 판단과 양형 결정, 들쭉날쭉한 재판, 전관예우 등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과 경찰, 법원 안팎에서는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말이 여전히 나돈다. 국민들이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법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기로 했을 때 박수가 쏟아졌던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4 비생산적 정치 ‘야당되면 공격-여당되면 방어’ 이분법 구태

한국 정치는 정치인 개인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정치하기 어렵다. 무조건 당론을 따르는 ‘당론정치’다. 해법이 간단치 않은 구조적 문제다. 여기다 집권 여부에 따라 ‘다 얻거나 다 잃는’ 시스템 때문에 집권을 위해서는 ‘다 걸기’ 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파적 유·불리만이 중요할 뿐 판단의 일관성이나 도덕적 가치는 쉽게 무시된다. 때로는 상식마저 뒷전이다. 고위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도 정파적 이해에 얽히면 고무줄 잣대가 돼버린다. 야당은 공격하고 여당은 방어하는 ‘익숙한 도식’만 존재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를 유도하며 사회를 통합한다는 정치 본래의 역할은 간 데 없고 거꾸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적’과 ‘내 편’의 구분만이 중시되는 진영문화, 흑백논리는 사회 분위기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친다. 사회 구성원들의 이분법적 사고로 정치 문화와 시민 의식이 퇴보하는 것. 상생의 정치, 생산의 정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5 불투명한 행정 ‘빽’ 있으면 통하는 뒷거래 관행 차단을

공식 절차로는 잘 진행되지 않던 일이 ‘아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의 전화 한 통화로 술술 풀리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 인·허가가 대표적이다. 모호한 규정, 따라서 공무원의 재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행정시스템에 원인이 있다. 여기다 ‘공무원의 발목잡기’라도 개입되면 아무리 허가 조건을 구비해도 일은 안 된다.

이른바 ‘빽 문화’가 잔존할 수 있는 토양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 해결을 공식 채널 대신 사적인 채널에 의존하게 된다. 이 같은 불투명한 행정절차는 필연적으로 ‘뒷돈 문화’를 만든다. 부패와 불신풍조의 온상이 되는 것. 이는 또 효율성을 저해해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 음성적 채널은 줄어들고 공적 채널이 활성화돼야 공정한 사회로 갈 수 있다.

6 불공평한 과세 국민 모두의 짐… 납세의 성역 허물어야

“현금을 내면 10% 싸게 해주겠습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한 편법이다. 납세는 헌법적 의무다. 그렇지만 납세 의무를 성실히 지키고 있는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소득이 유리알처럼 공개된 봉급생활자들이 자주 그런 박탈감을 느낀다. 세금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탈세와 절세를 혼동해서는 사회지도층이 될 수 없다. 상습 고액 체납자 등 그동안 세금을 피해 다녔던 이들에게 세법을 정확하게 적용해 과세하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공평과세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국민은 의무를 이행해야 할 이유를 잃게 된다.

7 허술한 안전망
복지-일자리 통해 ‘다시 뛸 기회’ 제공을


시장경제는 지금까지 등장한 가장 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이지만 취약계층이 불가피하게 생겨난다. 한국은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국력과 국부가 향상됐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빈부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다.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에 그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경쟁에서 뒤처진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저소득임에도 제대로 된 복지대책이 없는 근로빈곤층에 대해서도 교육, 복지, 고용 등을 통합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번 해고당하면 새 일자리를 찾기가 힘든 노동시장의 경직성, 한번 신용불량자 딱지가 붙으면 취업이나 신용 거래에 견고한 장벽이 생기는 현상도 반드시 개선해야 할 숙제다. 한번 실패한 사람에게도 ‘제2의 기회’를 부여하는, 패자 부활이 가능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8 고장 난 교육사다리 교육 통한 계층이동 없이 ‘개천의 용’ 불가능

교육은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계층이동 사다리’다. 부모의 배경이 자녀 교육의 질, 학습 방법, 학업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영향이 너무 치명적이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 기회 불균형을 확대시키고 계층세습을 강화한다.

그 결과 경제적 소외계층 자녀가 이른바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대 등에서는 지역균형선발제 인원을 대폭 늘리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다. 능력이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라면 구성원들은 희망을 갖기 어렵다. 소외계층 출신도 교육을 통해 계층상승이 가능해야 사회불만도 완화된다. 개천에서도 용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9 공적 헌신을 홀대 공동체 위한 희생에 박수쳐주는 사회로

업무의 성격상 자신의 신체적 위해를 감수하고 공적 봉사를 하는 군, 경찰, 소방관 등에 남다른 존경과 보상을 하는 것이 선진국의 오랜 전통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존경은커녕 비아냥과 홀대의 대상이 됐다. 낡은 단칸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는 국가 유공자들이 숱하다. 군대는 ‘빽’ 없는 사람만 고생하다 오는 곳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보훈은 조국독립, 국가안보, 민주발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희생하거나 공을 세운 사람을 예우하는 제도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국민들이 그들을 존경하고 예우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한다. 보훈은 국민통합 및 국가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예우는 건강한 공동체를 가꿔가는 기반이 된다.

10 불공정한 기업거래 중소-대기업 상생협력 문화 정착시켜야

중소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으로부터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시장 침탈 등 여러 유형의 ‘불공정 행위’를 경험하거나 강요받고 있다. 전 업종에 걸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 경제개발 과정에서 대기업에 자원과 지원을 집중하는 정책을 써왔다. 이 같은 산업정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을 만들어내는 등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과실은 대기업이 전유하고 중소 협력업체들은 끝없는 경영난의 굴레에 허덕인다. 중소기업들이 건강해야 장기적으로 대기업도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중소기업들은 또한 수많은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을 일시적인 캠페인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문화로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외교부의 장관 딸 위한 ‘맞춤형 특채’
▲2010년 9월7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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