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차령산맥을 따라서<17>부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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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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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백제史 속으로의 산행

부소산의 필수 코스인 낙화암. 일본인 관광객들이 낙화암 위쪽 백화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부소산의 필수 코스인 낙화암. 일본인 관광객들이 낙화암 위쪽 백화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늦가을, 비 오는 날, 저녁 무렵, 혼자서’ 찾아야 부소산(扶蘇山)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의 조건을 갖춘 16일 오후 부소산에 올랐다. 비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나선 나 홀로 산행이었다.

부소산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내와 금강(백마강) 사이에 있다. 부여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단골 소풍코스였는데 그때는 이렇게 작은 줄 몰랐다. 아마도 빠른 걸음으로 한두 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해발 106m로 낮고 평평해 하이힐 산행도 무리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한 답사 전문가는 이렇게 썼다. “부소산성이라는 것은 말이 산성이지 뒷동산 언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게 잔망스러워서 무슨 전설과 역사를 여기다 갖다 붙인 것이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다.”

하지만 산행은 생각만큼 빨리 끝낼 수 없다. 백제의 찬란하고도 애절한 역사가 발걸음을 휘휘 감기 때문이다. 산을 한 바퀴 돌면 부소산성, 군창지, 영일대, 송월대, 사비루, 영일루, 반월루, 백화정, 궁녀사, 삼충사, 낙화암, 고란사, 조룡대 등 무수한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산행이 역사기행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면서 쌓은 사비(지금의 부여)시대의 도성(都城)이 부소산성이다.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던 백제 성왕 16년(서기 538년)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소산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백제 말기의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장군을 모신 삼충사가 나타난다. 거기서 조금 올라 ‘땟쨌골’이라고 부르는 곳에 삼천궁녀의 원혼을 위로하는 궁녀사가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낙화암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소나무는 점점 길고 곧은 낙락장송으로 변한다. 절개와 지조의 현장이 가까이 있음을 미리 알려주듯이.

부여를 대표하는 장소는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서기 660년(백제 의자왕 2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명이 치욕보다는 죽음을 택해 투신했다는 곳이다. 투신하는 궁녀를 꽃으로 표현했다.

때마침 건양대와 자매결연한 일본 대학생 50여 명이 가이드에게서 낙화암 전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많은 학생이 “3000명?”이라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3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그저 많음을 상징하는 숫자라거나 300명의 와전이라는 얘기도 있다. 역사저술가인 구본창 씨는 ‘패자의 역사’라는 책에서 낙화암의 전설은 “왜곡과 허구”라고 지적했다. 우선 당시 사비성 인구가 5만 명이니 그 반을 여성으로 볼 때, 그 가운데 궁녀가 될 수 있는 연령대(15∼25세)는 어림잡아 4000명인데 이들이 대부분 궁녀였단 말이냐는 얘기다. 왕궁 터의 규모를 볼 때 궁녀 3000명을 수용하기 어렵고, 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서 어느 곳에도 삼천궁녀의 이야기는 없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의자왕의 방탕함을 강조해 침공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신라의 의도적인 조작이었을까. 하지만 삼천궁녀의 얘기가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에서 처음 발견된다는 견해도 있으니 진위는 알 수 없다.

낙화암 밑의 고란사는 꼭 대중가요의 가사가 아니어도 종소리가 금방이라도 은은히 울릴 것 같은 분위기다. 고란초를 보면서 샘물을 마시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 이곳을 휘감아 도는 백마강은 더욱 아름답다.

부여 사람들은 부여읍 정동리 앞 범바위와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에 이르는 약 16km 구간의 금강을 특별히 ‘백마강’이라고 부른다. 백마강을 운행하는 황포돛배를 타면 낙화암과 고란사를 감싸 안은 부소산이 절경으로 다가온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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