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300만시대…일주일간 스마트폰 없이 살아봤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7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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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후덥지근했고, 아내는 요리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10시 8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기 때문에 화면 맨 윗줄의 현재 시간이 선명하게 보였다.

"자기, 아이폰을 산 이후로 내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것 같아. 내 얘기를 건성으로 흘려듣고는 기억을 못해. 그 대신 하루 종일 그 기계를 손에서 못 떼고 뭔가 읽고 있어."

여름휴가가 끝나가던 주말에 들은 소리라 더 미안했다. 7분 뒤, 나는 아내에게 휴대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 전화기의 범용가입자식별모듈(USIM) 카드를 꺼내 내 아이폰에 넣었다. 내 것은 아내의 휴대전화에 바꿔 끼웠다. 이러면 기계를 바꿔도 내 전화번호를 계속 쓸 수 있다. 아내와 전화기를 맞바꾼 것이다. 속으로는 이러면 아내도 기계에 빠졌던 나를 이해하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아내는 일반 휴대전화를 쓰고, 나는 지난해 11월 말에 아이폰을 사서 계속 써 왔다.

하지만 당장 그날 밤부터 문제였다. 자기 전 침대에서 뭔가를 읽던 버릇은 아이폰을 산 뒤로 어느새 그 화면을 들여다보는 버릇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기계가 손에서 사라지니 잠도 오질 않고 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불안하기까지 했다. 책을 읽자니 탁상용 스탠드를 쓴지 오래 돼 어디 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아내의 친구가 돌잔치에 초대했다. 어느 길이 막힐까 찾아보려는데 아내의 휴대전화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계속해서 쌓여 있을 e메일과 트위터의 '트윗'이 걱정됐다. 주말에도 일거리를 들여다보는 게 이미 버릇이 됐다.

사흘 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자 비로소 책으로 손이 갔다. 두 달 동안 필요한 부분만 조금씩 들춰봤던 책들이 순식간에 다 읽혔다. 밤에는 먼지 쌓인 탁상용 스탠드도 다시 찾아내 머리맡에 놓고 책을 읽었다. 나흘 째. 휴가가 끝났다. 출근길에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고 나왔다. 모두 몇 달 만의 일이었다.

닷새 째. 출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아내의 작은 휴대전화로 무선인터넷을 켰다. 화면도 작고, 조작도 불편해 스마트폰과는 천지차이였지만 그래도 가방 속의 책 대신 그 불편한 휴대전화 화면이 훨씬 익숙했다. 버릇은 무서웠다. 이런 얘기를 들려주자 동료들은 "금연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스마트폰 중독인가.

이날 출입처에서 만난 다른 신문사 기자는 "아이폰 탈옥(개조)이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은 좀 의문"이라는 얘길 꺼냈다. 무슨 얘기인지 몰라 물어봤더니 오전에 나온 뉴스란다. 이미 나와 같은 일을 하는 기자들은 3시간만 지나면 모든 주요 속보를 파악하곤 했다. 나는 그런 시간의 흐름에서 '몇 시간' 뒤쳐져 있었다. 스스로가 걱정됐다.

엿새 째. 지방으로 취재를 떠났다. 맛있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알 길이 없어 그 동네 회사 직원들에게 물었다. 어디가 맛있는 커피집이냐고. 기계 대신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한 건 또 얼마만이던가. 추천받은 커피집의 커피 맛은 좋았다.

그날 밤, 아내는 새 탁자를 샀다. 색상은 '럭셔리 블루', 이름과는 달리 값은 2만 원이 채 안 됐다. 어제 아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하던 걸 슬쩍 옆에서 봤을 뿐인데 가격과 색상, 제품 이름이 선명히 기억났다. 돌이 갓 지난 아들은 오늘 욕조를 약간 큰 것으로 바꿨다. 키가 컸구나. 낮에 아내가 달린 러닝머신 위의 전깃줄의 위치가 바뀐 것까지 보였다. 집안의 디테일이 하나둘 발견됐다. 그동안 이런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내 무신경과 함께. 몇 년 전 담배를 끊자 늘 먹던 음식 맛이 갑자기 색다른 맛으로 느껴졌던 것처럼, 주위에 대한 감각도 되살아났다.

이레 째. 일주일을 스마트폰 없이 지내면서 나는 한 시간 이내에 확인하던 e메일을 반나절이 넘도록 쳐다보지 않기도 했고, 트위터에서 화제였던 내용을 하루 뒤에야 알게 되기도 했다. 책도 많이 보고, 아이와 더 놀아줬지만 속도 경쟁에서 뒤쳐지는 기분에 불안했다. 결국 아내에게 아이폰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트위터와 최신 속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스마트폰은 커피 같았다. 커피는 각성을 도와 일상을 더 효율적으로 살게 해주긴 하지만 위벽이 헐고 나서야 위험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나는 커피를 계속 마신다.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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