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질환자’도 이젠… 현행법상으론 아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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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고안’ 시행 1년

존엄사 신청자 나와
‘불법시행’ 계속 논란

지난해 3월 결핵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김모 씨(53)는 6개월 만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삶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안 그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서류(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해 의료진에 제출했다. 이에 앞서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7월 7일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이른바 ‘존엄사’의 신청 대상을 말기 암, 에이즈 환자에서 말기 일반질환자로 확대하는 진료권고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김 씨는 이 권고안에 따라 서울대병원에서 처음 맞는 일반질환 신청자였다.

○ 결핵성 폐질환자, 연명치료 중단 신청


김 씨의 폐는 이미 결핵균이 퍼져 손을 쓸 수 없었다.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숨을 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 할머니 존엄사 논란’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거부에 관심을 가져온 김 씨는 서울대병원이 일반질환자들에게도 신청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놀란 부인과 아들이 반대했지만 김 씨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마침내 김 씨는 9월 12일 부인과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청서를 작성하고 가족의 동의 서명을 받았다.

김 씨가 병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안 친지들은 “왜 중환자실로 옮기지 않느냐”며 부인을 나무랐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험담하는 이들도 있었다. 괴로웠지만 남편의 확고한 결심을 알고 있었기에 버텼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낸 10월 13일 김 씨는 ‘원하던’ 죽음을 맞았다.

서울대병원에서는 6개월마다 약 300명의 말기환자가 임종한다. 병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11월 7개월 동안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관련 서류를 작성한 말기환자는 위암 10명, 폐암 6명, 췌장암 3명, 담도암 3명 등 총 40명이었다. 이 중 10명은 본인이 직접 신청서를 작성했다. 김 씨는 암환자가 아닌 일반질환자 가운데 처음이자 유일한 신청자였다.

○ 일반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은 불법


김 씨의 연명치료 중단은 사실 법 테두리 바깥의 일이다. 국회는 올 4월 28일 ‘암 관리법 전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켜 환자와 환자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실질적인 존엄사 허용이었지만 말기 암환자에 국한했기 때문에 김 씨 경우는 해당이 안 됐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연구해온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는 “(가족이나 환자가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는 것은) 관례적으로 이뤄지고 있던 일인데 국가나 사회가 지나치게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7년 전국의 만성질환사망자 18만2307명 가운데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은 상태로 사망한 환자는 전체의 83.5%,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사망환자는 82.4%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일은 흔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허 교수는 “인공호흡기 부착을 유보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선종도 따지고 보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연세대 김 할머니 경우와 다를 바 없다”며 “연명치료 중단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인데도, 부정적인 행위로 비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 환자와 가족들도 이해 부족

환자와 가족들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대화와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전문병동이 지난해 9월 입원한 말기 암환자 20명의 가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가족은 7가족에 불과했다. 12가족은 의사소통 구조가 폐쇄적이었고 1가족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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