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다칠라… 강력범 설쳐도 무리하지 말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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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서 고문 사건후 사기저하 두드러져
“실적 떨어지면 감사 나와… 압박감에 무리수”

“요즘엔 팀원들에게 항상 ‘이제 퇴직 3년 남았다. 내 퇴직금 안 날아가게 조심하라’는 말만 합니다. 솔직히 양천서 사건 이후엔 수사도 잘 안되고, 몸을 사리게 되네요.”

서울 양천경찰서 가혹행위 사건과 관련해 경찰 4명이 구속되자 일선 경찰들의 사기 저하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고문 경찰’ 의혹이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나자 민주화 이후 조금씩 개선된 경찰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자괴감도 나타냈다. 가혹행위가 잘못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능적이고 거친 마약 특수절도 피의자 등을 다뤄야 하는 강력계 형사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강력팀장은 “양천서 사건은 우리 역시 이해하지 못할 사건이고 그 여파가 너무 크다”며 “사건 이후 붙잡혀 오는 강력범들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도 ‘무리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퇴직을 3년 앞두고 있다. 한 일선서 수사관은 “양천서 사건 이후 범죄 피의자들이 입을 열지 않고 ‘할 테면 해봐라’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가혹행위 논란 이후 피의자들이 경찰을 깔보는 태도가 전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이 일선 수사관들의 얘기다.

이번 인권위 진정에서 가장 문제가 된 ‘마약사범’을 전담하는 수사팀은 더욱 전전긍긍이다. 경찰서마다 강력팀 중 하나가 마약수사팀이다. 한 마약팀 팀장은 “마약사범들이 마약을 복용하면 대부분 힘이 세져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어디까지가 ‘가혹행위’이고 어디까지가 ‘제지’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마약사범들은 계속 난동을 부리기 때문에 담당 형사가 새벽에도 유치장을 계속 드나들며 상황을 챙겨야 한다”며 “벽이나 집기에 몸을 던져 자해하거나 심지어 벽을 스티로폼으로 감싼 ‘안전방’에 넣어둬도 모두 뜯어버려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냉소적인 반응도 경찰 사기 저하에 한몫을 하고 있다. 서울 동부지역의 한 수사과 형사는 “며칠 전 초등학생 아들이 집에 들어오더니 ‘아빠도 누구 때렸어’라고 묻더라”며 “그 이유를 되물으니 ‘학교에서 아이들이 너희 아빠 경찰인데 사람 때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며 침통해했다. 인터넷에는 경찰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글들이 많아졌다. 일선 수사관들은 “몇 명 때문에 결국 10만 경찰이 모두 ‘고문경찰’이 된 셈”이라며 침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선에서는 이번 사건의 원인을 ‘실적주의’ 때문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장은 “실적이 하위권이면 지방청에서 일주일 넘게 감사를 붙여 감시한다”며 “이 같은 압박에 밀려 무조건 강하게 수사해야 하는 고충이 일선 경찰서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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