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댁 홍띠엔의 눈물, 우리 이웃들이 닦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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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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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남편 잃고 생계막막… 3남매 친정보내 생이별

어린이재단은 전셋집을
부산동구청은 가전제품을
참전용사들은 항공료를
환경미화원들은 후원금을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베트남 친정에 떠나보내야 했던 홍띠엔씨가 9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돌아온 아이들을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제공 부산동구복지관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베트남 친정에 떠나보내야 했던 홍띠엔씨가 9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돌아온 아이들을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제공 부산동구복지관
9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 베트남에서 도착한 아이 3명이 입국장에 모습을 보이자 윈티 홍띠엔 씨(26)는 달려가 이들을 품에 꼭 안고 눈물을 흘렸다. 얼싸안은 어머니와 세 아이는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 하나만 믿고 따라온 낯선 한국에서 남편을 떠나보내고 생계 때문에 아이들과도 생이별한 홍띠엔 씨의 유일한 꿈은 가족을 만나는 것이었다. 낯설기만 했던 한국 땅의 온정 덕분에 잡히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소원은 현실이 됐다.

○ 남편을 잃고 아이 셋과 ‘생이별’

홍띠엔 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열아홉의 나이로 무역업을 하던 남편과 결혼한 2003년. 하지만 2006년 갑자기 사업이 어려워졌고 남편은 곧 뇌종양으로 쓰러졌다. 2008년 수술을 받았지만 남편은 한국에 아내와 세 아이만을 남긴 채 떠났다.

당장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지만 어린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곁에 없었다. 홍띠엔 씨는 결국 2008년 베트남 친정에 아이 셋을 두고 홀로 한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살 집을 마련하지 못해 외국인 쉼터에서 지내는 처지였지만 식당 등에서 일하며 교통비와 방세, 식비를 제외한 40만 원 남짓한 돈을 베트남에 매달 보냈다. 생활을 다 정리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발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의 나라인 데다 아이들 아버지의 나라를 등질 수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인걸요. 일주일에 2∼3번의 통화, 화상채팅으로 그리움을 겨우 달랬죠.”

물론 이산가족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녀 한국말을 곧잘 하던 첫째 정수(7)는 점차 말을 잊어갔고 용화(5)는 울먹이며 자꾸만 ‘엄마’를 불렀다. 막내 수영이(2)는 아예 엄마 기억을 잊어가는 듯했다. 또 이들 삼남매 모두 한국국적의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베트남에서 3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정수는 베트남 국적이었다면 학교에 다녀야 하지만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베트남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다.

○ 한국의 온정에 다시 만난 가족

그래도 행운이 따랐다. 2009년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음식을 파는 음식점 ‘레인보우 스푼’에 취직이 된 것. 월급은 85만 원 안팎으로 많지 않지만 베트남 문화를 알릴 수 있고 또 같은 처지의 결혼 이주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홍띠엔 씨에게는 그 이전까지의 직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9일 일곱살 맏이의 생일날
인천공항서 2년만의 재회
“당당한 한국인으로 키울게요”


하루빨리 아이들을 데려올 그날을 그리던 홍띠엔 씨의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은 한국의 ‘정(情)’이었다. 그를 걱정한 복지관과 구청 등은 ‘홍띠엔 가족 재결합 프로젝트’를 구상해 주거지와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차곡차곡 준비해줬다. 어린이재단과 부산 동구 사회복지관은 앞장서서 홍띠엔 씨의 사연을 알려 후원금 2000만 원을 마련해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작은 전셋집을 구했다. 부산 동구청의 직원들은 텔레비전과 세탁기 등을 선사했다. 부산의 몇몇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120만 원을 항공료로 기부했다. 사회복지관은 “앞으로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무상으로 돌봐주는 한편 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도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구 환경미화원들도 월 몇만 원씩이나마 후원금을 내기로 했다.

다시 뭉친 가족은 9일 첫째 정수의 생일을 맞았다. 빡빡한 살림이다 보니 선물을 따로 마련하지 못했지만 엄마는 따뜻한 밥상을 차렸다. 생일 모자를 쓴 정수와 두 딸을 품에 꼭 끌어안은 홍띠엔 씨는 “이제 아이들이 아빠처럼 당당한 한국인으로 자라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잘 키울게요”라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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