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용사 잊지 않겠습니다]조총 9발과 함께 평택 떠나던 날, 서해 풍랑도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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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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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서 안장식까지 6시간의 동행

아빠와 작별인사 천안함 46용사의 합동영결식이 열린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최한권 원사의 딸이 엄마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 아빠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아빠와 작별인사 천안함 46용사의 합동영결식이 열린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최한권 원사의 딸이 엄마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 아빠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마지막 길’ 영결식
유족들 “이젠 어떡하나요”
대통령 손잡고… 품 안기고…

시민들의 애도
“편히 쉬시라” 국화꽃 헌화
추모글 종이비행기도 날려

현충원에 안장
유족들 흙 뿌리며 또 통곡
“끝까지 함께한 국민께 감사”


천안함 침몰 사건 희생자 46명의 영결식이 거행된 29일, 사흘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날씨가 맑았다. 천안함 전사자 46명은 화창한 봄 날씨 속에 시민들의 국화꽃과 어린이들의 종이비행기, 전우들이 날려준 풍선을 뒤로하고 정들었던 해군 제2함대사령부를 떠났다. 유가족들이 탄 버스 10대를 비롯한 운구행렬 차량 90여 대는 대전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10km 가까이 꼬리를 물고 전사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옮겼다. 전사자 46명은 이날 오후 4시 20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사건 발생 34일 만이었다.

○ 눈물의 영결식

29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영결식은 유가족들의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특히 유가족들이 마지막으로 고인의 영정에 헌화하는 순서가 되자 순식간에 2800여 명이 모인 영결식장은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대통령의 경례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서 열린 46용사 합동영결식에 참석해 고인들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의 경례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서 열린 46용사 합동영결식에 참석해 고인들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영결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며 오열하자 끝내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김윤옥 여사는 영결식 내내 눈물을 흘렸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일부 의원도 눈시울을 붉혔다. 한 여성 유가족은 헌화를 한 뒤 이 대통령 부부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11시경 행사가 끝난 뒤 유가족들에게 가서 다시 인사를 했다. 유가족들은 대통령의 손을 붙잡으며 “어떡하나요” “살려주세요”라며 울었고, 한 여성은 이 대통령에게 한동안 안겨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일부 격앙된 가족은 전사자들의 이름을 부르다 장내에 쓰러지기도 했다.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씨는 아들의 영정에 헌화한 다음 영결식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게 달려가 “의원님, 북한에 왜 퍼주십니까. 이북 놈들이 죽였습니다”라며 흐느끼다 쓰러지기도 했다.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9발의 조총이 발사되고 함정에서 10초간 기적을 울린 뒤 희생자들의 영정은 해군 군악대 중창단 20명이 ‘천안함가’를 합창하는 가운데 영결식장을 빠져나갔다. 천안함 생존장병 46명이 희생자 46명의 영정을 하나씩 들고 이동했다.

○ 전국 애도의 물결

오전 11시 10분경 운구 행렬이 영결식장을 빠져나가자 안보공원 인근 평택군항에 정박한 함정 10여 척에서 일제히 기적을 울리는 ‘대함경례’를 5초간 보냈다.

부대 인근 해군아파트에서도 희생자 46명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졌다. 운구 차량이 지나가는 시간에 시민 500여 명이 나와 미리 준비한 흰 국화꽃잎을 고인들의 길 앞에 뿌렸다. 이 아파트에는 천안함 전사자 중 7명이 살았다. 해군아파트 주민인 김수향 씨(66·여)는 “나 역시 부모의 심정으로 눈물이 나서 나왔다”며 “이제는 정말 마음 편히 가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해군 자녀가 많아 ‘해군2함대 부속초등학교’로 불리는 인근 원정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 286명이 천안함 전사자들의 떠나는 길을 종이비행기로 배웅했다. 어린이들은 지나가는 운구 차량마다 위로의 글을 담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이 학교 양소진 양(10)은 ‘우리 바다를 하늘나라에서도 지켜주세요’라고 적은 종이비행기를 운구 차량을 향해 날렸다. 아이들은 고 남기훈 원사(36), 김태석 원사(37), 김경수 상사(34), 박경수 상사(29) 등 이 학교에 다니는 친구 아버지의 영정 차량이 지나가자 더욱 숙연해졌다.

평택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넘쳤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는 오전 10시 전사자들을 위한 사이렌이 울리자 줄지어 기다리던 조문 행렬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추모객은 29일까지 평택 제2함대사령부 등 군 분향소 57만 명, 서울광장 4만4000여 명 등 60만 명 이상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 대전현충원에 영면

천안함 희생자들의 안장식은 각계에서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됐다. 지금까지 현충원에서 열린 안장식 중 최대 규모다. 46명의 희생자 영현은 종교 의식과 헌화 등이 끝난 다음 최종적으로 사병 묘역인 308묘역에 하관(下棺)했다. 죽은 전우의 영정을 들고 부대를 출발했던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이때까지 희생자의 영정을 놓지 않았다. 유족들은 고인의 사진을 보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가족들은 하관 후 삽에 흙을 조금 담아 뿌리는 허토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오열했다.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도 자신이 들고 있던 이창기 준위의 유골함이 장지에 묻히자 끝내 눈물을 흘렸다.

안장을 끝낸 뒤 유족들은 평택 2함대 사령부로 되돌아왔다. 천안함 전사자가족협의회는 30일 오전에 가족 100여 명이 평택 2함대에서 초계함을 타고 백령도 침몰 해역으로 출발해 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가족협의회는 이날 영결식이 끝난 뒤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천안함 46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끊임없는 조문행렬을 보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평택=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대전=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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