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털 박힌’ 소방관들 구급대 발령?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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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된 초과근무수당 지급訴 취하 안했다고…“내근 부서 고된 업무 배치… 근무평가도 낮은등급 줘”압력 못이겨 줄줄이 취하

서울시내 A 소방서 소속 소방관 B 씨(48)는 올해 2월 갑자기 구급대에서 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20여 년간 화재 현장만 누빈 B 씨는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없고, 응급구조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지난해 12월부터 전국 소방관 1만여 명은 각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그동안 받지 못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한나라당 유정현 국회의원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소방관들이 받지 못한 초과근무수당은 총 2505억 원이었다. 1600여만 원을 받지 못한 B 씨도 소송에 참여했다. A 소방서의 한 간부는 소송에 참여한 B 씨 등을 모아놓고 “소송을 취하하는 게 예의”라고 압박했다. 동료들은 대부분 소송을 취하했고, B 씨 등 10여 명만 남았다. 이들은 모두 구급대나 초과근무가 거의 없는 내근부서로 발령이 났다. 이들의 자리는 구급대에서 일하던 젊은 소방관들이 메웠다. B 씨는 “들것을 나르고 무전을 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초과근무수당 소송’을 놓고 일선 소방서 소방관들과 간부들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소방서 내에서 인사권을 쥔 간부들이 소송을 낸 소방관들에게 소송 취하를 종용하고 응하지 않는 경우 힘든 부서로 발령을 내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간부들은 “정상적인 행정의 일환”이라는 태도지만 부당한 인사조치와 압박을 받고 있다는 소방관들의 주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갈등은 전국 소방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소송에 참여한 서울 C 소방서 소속 소방관 D 씨(40)는 “돈 문제보다 하위직에 무관심했던 관료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간부들의 소송 취하 압박을 거부했다. 소방차를 몰던 그는 결국 아무런 예고 없이 구급대로 발령이 났다. 최근에는 소방관 311명을 대표해서 충북도를 상대로 소송을 낸 영동소방서 임모 소방관(42)이 해임돼 표적 징계 논란이 일고 있다.

구급대 편성·운영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있거나 2주 이상의 교육을 받은 소방관만 구급대원이 될 수 있다. 인원이 부족한 소방서는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응급처치 교육을 이수한 소방관으로 충원할 수도 있다.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한 소방관(40)은 “자격을 갖춘 대원들이 충분한 소방서도 직원들을 모아놓고 소송 취하 압력을 넣거나 업무 연관성이 떨어지는 부서로 발령을 내고 있다”며 “공직사회에서 이런 압박을 버텨낼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만 2900여 명에 이르던 소송자 수는 최근 1500여 명으로 줄었다.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소방관들이 근무평가에서도 낮은 등급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소방장 계급 기준으로 최고 등급(S)과 최하 등급(C)은 성과급에서 43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구급대원들은 하루 평균 15∼20회로 출동이 잦다. 24시간 격일제 근무라 일이 험하다. 소방전문잡지 ‘119매거진’ 이호 팀장은 “미운털이 박힌 소방관들을 제일 괴롭게 하는 것이 구급대 발령”이라고 지적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구급대는 원칙적으로 교육을 받거나 자격증이 있는 소방관만 근무해야 한다”며 “일선 소방서 인력 배치에 잘못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밝혔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동영상 = “두렵습니다”…만삭 아내 뒤로하고 불길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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