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공판 ‘판사 옆에 속기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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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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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토씨까지 직접 챙겨
민감한 재판 감안 파격 조치
檢-辯 말 끊고 직접 신문도

일러스트레이션 최남진
일러스트레이션 최남진
24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 8차 공판이 열렸다. 재판장을 중심으로 배석판사 2명이 좌우 양쪽에 앉는 법대에 판사가 아닌 여성 속기사 한 명이 자리를 잡았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나온 모든 신문사항과 답변 내용 등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속기사는 통상 법대 아래에 자리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재판장인 형사합의27부 김형두 부장판사는 재판 진행 도중에 속기록을 수시로 확인하기 위해 8일 첫 공판 때부터 자신의 오른쪽 옆에 파격적으로 속기사 자리를 배치했다.

24일에도 증인으로 출석한 이원걸 전 산업자원부 2차관에 대한 신문이 시작되면서 검찰과 변호인 측 간에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대한석탄공사 사장 응모 과정의 청탁 의혹을 둘러싸고 팽팽한 접전이 시작됐다. 당시 산자부 석탄과장 김모 씨에게 곽 전 사장을 돕도록 지시하고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신문에 이 전 차관은 펄쩍 뛰었다. “전화번호…이런 것까지…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이 전 차관이 말끝을 흐리자 즉시 김 부장판사가 나섰다.

“잠시만요. 정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저는 곽 전 사장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전화번호를 알려줬을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될까요?”

김 부장판사는 속기사의 모니터와 재판장 자리의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증언의 토씨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정리해놓은 뒤 재판을 다시 진행했다. 증인의 발언 내용은 속기사가 받아 치는 대로 실시간으로 재판장 옆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 뜨는데, 이를 확인해가면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 검찰과 한 전 총리 양측이 사활을 걸고 있는 민감한 재판이라 말 한마디라도 정확하게 정리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시비가 생길 수 있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이뿐만 아니라 김 부장판사는 검사와 변호인 신문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 11일 2차 공판에서 곽 전 사장에 대해 검사가 증인신문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김 부장판사는 말을 끊었다. “검사님, 그런 식으로 물어보시면 안 됩니다. 증인, 재판장이 묻는 말을 잘 들어보세요.” 김 부장판사는 아예 검사의 신문 사항을 자신이 직접 물어나갔다. 변호인 신문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보다 못한 변호인이 신문권 보장을 요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통상 형사재판에서 재판장은 쟁점을 정리하거나 증인이 질문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를 제외하고는 검찰과 변호인의 신문이 모두 끝난 뒤에야 추가 신문을 한다.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때로는 검사나 변호인으로, 때로는 공판조서 속기정리 역할까지 떠맡는 ‘1인 4역’을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 동영상 = 사상 첫 총리공관 현장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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