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앞둔 성남 ‘천사의 집’ 아이들 “39명 생이별 막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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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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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서 요양시설 전환 결정
“혈육보다 더 아끼는 사이…”
복지부 등에 도움 호소 편지

14일 설날 아침, 경기 성남시 아동복지시설 ‘천사의 집’ 아이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우건호 원장(오른쪽)에게 세배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천사의 집에서 가족이 된 아이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사진 제공 천사의 집
14일 설날 아침, 경기 성남시 아동복지시설 ‘천사의 집’ 아이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우건호 원장(오른쪽)에게 세배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천사의 집에서 가족이 된 아이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사진 제공 천사의 집
경기 성남시 아동복지시설인 ‘천사의 집’ 우건호 원장(52)에게는 아직도 10년 전 은정이(가명·16)가 처음 온 날이 생생하다. 은정이는 당시 여섯 살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낭비벽이 있던 아버지는 혼자 은정이를 키울 수 없었다. 아동상담소에 맡겨진 은정이는 천사의 집에 오게 됐다. 은정이는 낯선 선생님이 무서워 안 가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우 원장은 은정이가 좋아하는 껌을 사들고 와 어르고 달래서 겨우 천사의 집에 데리고 왔다. 무섭다며 여자 선생님 뒤에 꼭꼭 숨어 지내던 은정이는 이제 어엿한 여고생이 된다.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는 이야기에 우 원장이 “우리 못난이, 공부는 잘하네”라고 하자 은정이가 눈을 흘겼다. “고모부, 제가 왜 못난이예요.”

천사의 집 아이들은 우 원장 부부를 고모부, 고모라고 부른다. 시설에서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선생님은 이모부와 이모다. 이곳에서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나 부모가 있어도 함께 지낼 수 없는 아이 39명이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지낸 천사의 집 아이들이 또다시 가족을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

“장관님, 저희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설을 앞둔 11일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천사의 집을 찾았다. “어려운 점이 없느냐”는 장관의 물음에 김경민 군(가명·16)이 일어나 또박또박 말했다. “여기 살고 있는 아이들은 진짜 가족보다도 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어요. 그런데 소중한 가족과 또 이별을 해야 하나요.” 딱한 소식을 접한 법무부는 막상 소관 부서가 아니어서 난감해하고 있다.

1958년 세워진 천사의 집은 곧 문을 닫게 될 상황에 처했다. 천사의 집이 소속된 사회복지법인 천사복지재단이 천사의 집을 노인요양시설로 운영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이미 서울시 아동복지팀에 정관 변경 신청을 접수시킨 상태다. 법인은 성남에 있는 천사의 집을 아예 닫고 건물을 외부에 팔 계획이다. 아동복지시설인 천사의 집은 순수하게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운영돼 영리사업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노인복지시설의 경우 시설에서 보살피는 노인 수에 따라 정부가 보험수가를 지불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요양보호사의 월급 액수에 따라 운영비가 남을 수도 있다. 천사의 집은 5, 6개월 안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

천사의 집이 없어지면 이곳에 살던 아이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다른 시설로 옮겨가야 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도 계속 다니기 어렵다. 의젓한 경민이는 어린 동생들이 더 걱정이다. 경민이는 2년 전 천사의 집에 오기 전까지 가출도 하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부모가 이혼한 뒤 재혼한 어머니와는 같이 살 수가 없었다.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경민이는 방황했다. “동생들이 또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저와 같은 실수를 저지를까 봐 걱정이에요.”

시설이 문을 닫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천사의 집 고학년 아이들은 요즘 보건복지가족부, 서울시 등에 도와달라며 편지를 보내고 있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어른들의 결정으로 우리가 주인인 천사의 집이 하룻밤에 사라져야 하나요.”

성남=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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