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산책/이준기]‘열번 찍는’ 패기는 젊음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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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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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무를 열 번 도끼질하는 나무꾼이 사라졌다. 세상이 약아져서 한 나무를 열 번 찍는 것보다 열 나무를 한 번씩 찍어보고 약한 나무를 찾아 베는 것이 전략적이라는 얘기다. 현명한 자세일까.

학보사 학술기자로 활동하며 기사를 쓰는 일보다 원고청탁과 인터뷰 요청에 공을 많이 쏟았다. 대학신문으로선 흔치 않은 10부작 연재기획을 추진하면서 좋은 필진을 구성해 기획을 살리겠다는 욕심이 컸다. 그러나 웬걸. 일자무식 대학생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교수님의 글은 어찌나 받기 어려운지, 다들 한 학기 원고는 미리 청탁받아 놓은 듯했다. 독자가 한정되고 원고료 또한 일간지에 비해 턱없이 적은 대학신문에서 명저자의 글을 받자니 부탁하는 쪽에서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 기획 주제가 국내 학계에선 생소한 GNR혁명(유전학 나노학 로봇학의 나선형 발전으로 혁명적 진보가 이뤄진다는 레이 커즈와일의 학설)이고 쉽게 글을 쓰는 이공계 교수님이 드문 터라 필자 선정부터 난항에 빠졌다. 기획단계에서 자문하면서 국내에 통섭개념을 토입한 최재천 교수님과 ‘과학콘서트’로 스타덤에 오른 정재승 교수님으로 필자망을 좁혔다. 수차례 시도한 통화가 실패하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e메일이 정중한 거절로 끝나자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된 도끼질 끝에 정재승 교수님의 답변이 도착했다. “제가 힘닿는 대로 도와드리도록 하고요, 원고를 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의 경우는 삼고초려 끝에 강연회가 끝나고 연구실로 돌아가는 시간에 극적으로 조우해 지하철 안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대학생의 열정을 낭만으로 받아들여주는 교수님이 많고 한시적인 두려움보단 계속된 도전이 보상받는 시대임을 내가 만든 신문을 보며 깨달았다.

대학에 입학해 동기와 선배를 만나면서 의외로 쉽게 뜻을 꺾고 작은 실패에도 포기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한비야의 책을 읽고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며 사는 이를 동경하면서도 회의주의나 귀차니즘에 쉽게 취해버리는 시대. 영리한 대다수가 빠른 성공을 위해 지름길을 찾아가는 시대다.

오늘과 내일 내가 한평생 찍을 만한 ‘커다란 나무’ 하나를 점찍어보자. 억센 고목에 도끼 자루가 부러질까 봐 겁나는가? 큰 고목은 오래 도끼질해야 하니 차라리 다른 나무를 찾아보고 싶은가? 내가 보기에는 당신 눈앞에 있는 나무가 꽤 건실해 보인다. 당신도 꽤 유능한 나무꾼 같아 보인다. 신나게 도끼질 한번 해보자.

이준기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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