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인의 세종시 수정안 심리’ 심층 인터뷰로 분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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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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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자니 껄끄럽고 버리기는 아까워”
■ 연세대 황상민교수 분석

충청권은 흔히 ‘여론조사의 무덤’으로 불린다. 설문 결과와 실제 민심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다. 정치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는 더욱 그렇다. 작년 10월 재·보선 때도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았지만 개표를 해보니 민주당의 완승이었다.

전문가들은 세종시 문제에 대한 충청지역 여론조사 결과들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이를 감안해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사진)는 최근 일반적 여론조사 대신 심층 인터뷰 기법을 동원해 충청도민들의 의식 상태를 분석했다. 이를 근거로 황 교수는 이번 주 초 ‘충청인 심리지도’ 초안을 만들었다. 청와대도 그 내용을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교수는 세종시 및 이명박 정부 등과 관련한 수백 개의 문항을 만든 뒤 조사 대상자들에게 동의 여부를 물었다. 유사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을 모아 공통점을 뽑아내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 그는 “충청권 25명을 상대로 했으며 추가로 현지에서 주민들과 인터뷰를 했다”며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으로 장기(臟器) 내부를 들여다보듯 심층 인터뷰로 내면을 분석하는 조사 기법이어서 많은 수를 대상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충청도민들의 의식을 ‘규범적 태도’와 ‘실용적 태도’로 구분했다. 규범적 태도는 조사 대상자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의견과 관련이 있고, 실용적 태도는 내면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규범적 태도의 차원에서는 조사 대상자 전원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제시한 ‘원칙과 신뢰’를 지지했다. 이는 세종시 원안이 고수돼야 한다는 의견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실용적 태도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수정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심리상태를 가진 사람이 70%, 원안 고수자가 30%로 나타났다. 실용적 태도의 차원에서도 원안 고수자로 분류된 사람들 가운데 90%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자였다.

황 교수는 “질문 중에 ‘신의와 원칙이 중요하다’와 관련한 문항이 있는데 원안 고수론자와 수정안 찬성론자 모두 여기에 동의했다. 하지만 ‘세종시로 일자리가 생기는 게 중요하다’와 ‘지방균형발전이 중요하다’에 대한 견해를 물으면 찬반이 갈렸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 창출에 동의한 사람들은 ‘그래도 이 대통령이 추진력이 있기 때문에 뭔가를 하겠지’라고 기대한다는 사람들이고, ‘균형발전’에 동의한 쪽은 ‘이명박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한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황 교수는 “심층 인터뷰를 해보면 충청도 사람들은 아산 탕정이나 파주 같은 도시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또 충청도민들이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기 때문에 수정안을 수용하지는 않지만 내심으로는 ‘정부가 수정안(에 제시된 혜택)을 철회하면 어떡하나’, ‘세종시 이슈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70%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곧 충청권의 목소리를 아무도 대변해 주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으로 이어진다. 황 교수는 “인터뷰 대상자들은 자기들을 대신해서 얘기해 줄 사람이 없다는 데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뭔가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한편 정운찬 국무총리가 자신들을 대변해 주길 원하고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황 교수는 “충청도민들은 정 총리를 서울에서 출세한 ‘머리 좋은 귀한 자식’으로 여기고 있다”며 “‘정 총리가 충청권 이익에 반대되는 사람과 싸워야지, 귀한 아들이 시골에 내려와서 자신들을 설득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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