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 아이가 ‘두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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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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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착하디착한 우등생
밖에 나가면 거짓말 폭언 도벽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K 씨는 지난해 가을 아들의 학교 담임선생님과 상담한 뒤 충격을 받았다. 부모 말 잘 듣고 욕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걸로 알았던 아들이 학교 친구들의 샤프를 상습적으로 훔치고 이에 항의하는 여자아이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된 것이다.

K 씨는 담임교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차장이고 아내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잘나가는 연구원인 만큼, 이런 부모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가 그런 짓을 저지르리라곤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반 학부모들이 K 씨의 아이에 대해 똑같은 증언을 연이어 하면서 K 씨는 큰 충격에 빠졌다.》


어느날 ‘댁의 자녀에게 문제’ 듣게 된다면

아이행동 관찰-대화 부족한 워킹맘 가정에 잦아
평소 양육방식 등 ‘부모의 문제’부터 찾아내 고쳐야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전혀 다른 아이의 모습을 알게 될 때 부모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부모는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확신하지만, 적잖은 아이는 부모를 앞에 두고 착한 척하는 ‘연기’를 한다. 가정에서는 매우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반면 밖에서는 폭력적이거나 욕과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도 많다.

‘두 얼굴’을 가진 아이들. 왜 생겨나는 걸까. 잘못은 바로 부모 자신에게 있다. 아이의 두 얼굴은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내 아이는 정말 착할까? 양순할까? 자녀를 다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지금부터 긴장하라. 의심하라. 자녀와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라.

서울 강남구의 한 어학원 강사인 채모 씨(29·여)는 자신이 가르치는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형제의 행동에 문제를 느끼고 어머니 이모 씨(42)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평범한 가정에 학교성적이 둘 다 최상위권인 데다 학원생활도 성실했지만, 간혹 드러나는 폭력적인 성향과 습관적인 거짓말 때문이었다.

형인 P 군(16)은 수업시간에 갑자기 혼잣말로 “○○새끼” “△△놈”이라고 욕을 했다. 단어시험을 볼 때 채 씨가 어휘문제를 출제하면 “××, 발음도 거지같아”라고 말해 채 씨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험에서 안 좋은 점수를 받거나 받아쓰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보충수업을 할 때는 더욱 극단적인 행동을 보였다. 책상을 발로 차면서 공책을 마구 찢거나 휴대전화를 던졌다. 채 씨가 “아무래도 어머니께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하면 그제야 “엄마한테는 제발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빌면서 사정했다.

동생은 폭력적인 성향이 심했다. 여학생에게 심한 욕을 퍼부으며 때리고 겁을 주는 행위가 수차례 반복됐다. 동생은 모든 말을 거짓으로 일관했다. 시험지에 부모의 사인을 받아오라고 시키면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채 씨가 “왜 사인을 받아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엄마가 바쁘셔서” 혹은 “깜박 잊어버렸다”고 둘러댔다.

형제의 어머니에게 채 씨가 이런 사실을 전하자 어머니는 화를 내며 “우리 아이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집에서는 이 씨의 말에 순종적일 뿐 아니라 형제끼리 싸우는 일도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착하고 말을 잘 들었다는 것. 직장에 다니면서 박사과정으로 야간대학원에 다녔던 이 씨는 늘 바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녀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지시와 명령으로 일관했다.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5, 6곳의 학원에서 보냈다. 형 P 군은 “엄마가 늘 바쁘고 힘들어했기 때문에 엄마 앞에서는 착한 척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동생은 “엄마에게 맞거나 잔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집에서는 조용히 있었다”고 했다.

이렇듯 맞벌이 부모는 자녀와 함께 있으면서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절대시간이 적다. 이들은 자녀를 효율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바빠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미안함은 학원에 보낸다든지 용돈을 넉넉히 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이때 자녀는 부모 앞에선 순종적이지만 스트레스를 밖에서 표출할 수 있다.

한국집중력센터 조아라 팀장은 “워킹 맘은 특히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 아이를 잘 관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 사이에서 아이를 절대적으로 통제하거나 무조건 풀어주기 쉽다”면서 “30분, 1시간이라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 문제는 없었는지를 묻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업주부라도 자녀의 일에 세심하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자녀의 변화를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적잖다.

주부 최모 씨(40)는 며칠 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다니는 학교 근처 문구점에서 전화를 받았다. 문구점 주인은 “댁의 자녀가 문구점에서 몇 번이나 학용품을 훔쳤다”면서 “필요하다면 폐쇄회로(CCTV)를 확인시켜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얼마 전부터 아이의 가방과 필통에서 못 보던 학용품을 발견했던 기억이 났다. 샤프를 좋아하는 아이의 필통에 고가의 일본 제품이 보여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을 때 “친구가 줬다”는 아이의 대답을 흘려들었다. 최 씨는 “평소에 밝고 착하기만 했던 딸에게 그런 못된 버릇이 생겼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더 큰일이 생기기 전에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렀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아이는 몇 개월 전부터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갖고 싶은 샤프를 만지작거리다 친구가 부르는 바람에 얼떨결에 계산하지 않고 들고 나왔다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자, 가지고 싶은 학용품이 생기면 주머니에 넣어 나오기 시작했다. 최 씨는 “처음에 아이에게 새 물건이 생겼을 때 자세히 물어보거나 한 번쯤 더 확인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문제학생과 다르게 이런 아이들은 부모 앞에서는 감쪽같이 숨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부모가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자녀의 모습을 더 신뢰한다.

경기 남양주시 한 중학교의 김모 교사(34)는 “반에서 30등 안에 든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학생이 3년 동안 성적표를 위조해 상위권으로 부모를 속인 적도 있었다”면서 “아들이 상위권인 줄 알고 고등학교 원서를 쓰기 위해 학교에 온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도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발끈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1년에 4번 가져오는 성적표만 믿고 아들의 학업수준이 어떤지, 실제로 학교 공부를 얼마나 따라가고 있는지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던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 일산가족상담센터 구미례 소장은 “아이가 부모에게 숨기거나 밖에서 보이는 행동을 가정에서 하지 않는 것도 부모와 자식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자녀의 모습이 아닌 다른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행동의 실마리를 알게 된 경우 부정하지 말고 아이에게 직접 묻거나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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